성경에 나오는 시바여왕이 살았던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본 고장 북부 에티오피아 답사기 (1995년)


에디오피아 북쪽 정교회 지역으로 한달의 이머전 기간으로 잠시 언어공부를 쉬고 현지 문화적응 및 에디오피아를 배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떠나야한다. 동시에 선교지 답사및 교회 개척 가능성들을 타진하기 위하여 11월 30일 부터 여행을 했다. 이 정탐을 통해서 이곳에서의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보기 원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발견하기 위한 정탐 이었다. 북쪽 정교회 지역은 아직도 개신교가 들어가면 핍박과 순교를 각오 해야 하는 어려운 지역이다. 특히 북쪽의 선교 스테이션은 모두 공산 정부때 빼았곁고 아직도 정교회의 압박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이다. 계속해서 빼았곁던 선교 스테이션들을 되찾기 위한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이 여행을 위해서 도요타 짚차를 임대해 KHC현지인과 슬리핑 백 카다딘 정수기 그리고 비상약들을 가지고 출발했다. 빠둣한 일정 가운데 96년 교회 설립과Bible School를 위한 기도를 부탁 드린다.

아이들과 집사람을 남겨두고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집을 비운다. 요즘 도둑들과 폭행 어려운 일들이 많은데 안전하기를 기도하며 떠나야 한다.

11월 30일(목)

에디오피아에서의 첫 여행이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5시 시계 벨소리에 의해 깼는데 강옥경 자매로부터 새벽에 전화가와 기도모임을 통해서 함께 기도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뒤에서 기도로 동역하는 기도의 힘입어 출발한다. 6시 10분에 임대한 4륜구동 짚차가 도착했다. 배낭에 아침을 바나나와 오렌지 빵등을 싸가지고 안방에 자고 있는 대선 지연이 방에 가서 기도 하고 출발한다. 차가운 아디스 아바바의 아침 공기를 뚫고 저희가 사는 짐마로드를 지나 시내를 관통 북쪽을 향해 나간다. 동쪽의 산 위에서 힘있게 빨알간 태양이 떠올라 선글라스를 유혹한다. 시내 중심에는 아침 운동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오직 달리기 뿐이 다. 육상 선수인 아베베의 후손들인가? 분주히 구걸하며 구두닦는 이들이 시내 거리거리에 있다. 시내를 1시간 벗어났다. 길게 쭉뻗은 시골길이 탁 트인다. 소떼와 염소들이 길가의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지금 이곳은 건기 추수때라 이곳의 주식인 인젤라를 만드는 시기이다. 하얀 밥을 만드는 쌀은 전혀 모르고 산다. 떼에프 추수는 소를 돌려서 발로 밟아 씨았을 추수한다. *

(에디오피아 지도)

한달 지나면 다시 농사를 시작하고 2달후면 비가 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4시간을 달려왔다. 지금부터는 수십개의 험난한 산들을 넘어야 한다. 산 하나를 넘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웅푹 수백미터 땅아래로 파인 웅장한 리프트 벨리 예루살렘에서 시작 우간다까지 긴 작품이다.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림으로 보았던 그랜드 캐년 못지 않다. 12시 20분 드디어 인젤라로 점심식사로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먹는 신맛이 나는 부친개에다 수십가지의 와뜨를 찍어 먹는데 고추가루로 만든 와뜨도 있다. 산 중턱쯤에서부터 손톱만한 우박비가 내려 차 앞 유리창을 때린다. 돌짝길을 적셔주어 먼지를 없애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다. 창니 인 고잠에 캄캄한 6시가 넘어서 도착 했다. 무려 600 Km의 거리를12시간을 산을 넘고 넘어 달려 왔다. 벌써 하늘에서는 반달이 따라온다. 고잠의 여성들은 머리의 유행이 없다. 박박 머리를 까는 것이 특징이고 남자들은 천조각을 몸에 두르고 창을 대신하는 지팡이들을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가지고 다닌다. 이곳은 다른 부족과 섞여 사는 부족인데 오르모어를 사용한다. 무슬렘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많은 어린이들이 와서 말을 건다. 어디가나 유명인사가 된다. 나의 이름이 유(You)로 알려 졌는지 유(You), 차이나 또는 코리아, 그 다음에 머니(Money)를 요구한다. 어렸을 적이 생각난다. 지나가는 미군들을 보고 컴과 쵸코렛을 요구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은 돈을 요구한다. 이땅에 북한 군인들이 많이 와서 살아서 인지 코리아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 한국말로 북한노래를 부르며 자랑하는 이들도 마르카도 시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영어로된 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6학년 어린이, 그리스도인이냐? 알라(무슬림)이냐 물으면서 자신은 모슬렘이라 자랑한다. 이곳 고잠에는 전기가 없고 제너레이터를 돌리는 여인숙이 있는데 방이 만원이다. 다른 어두 컴컴한 골목길에 있는 여인숙으로 간다. 호롱불을 켜고 물을 한통 얻어 하루종일 먼지를 둘러 쓴 몸은 할수 없고 이빨과 얼굴과 발만 닦을수 있다. 숙박비로 4비르(400원) 지나가는 주막집에서 인제라로 저녁을 먹고 방에 벼룩이약을 뿌리고 슬리핑 백속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 자동차의 휘발유가 없다. 주유소에는 모두 팔렸고 그옆집에서 개인이 2배로 판다. 아침에 찾아 보고 비싸도 사야한다. 이곳은 작년까지 교회가 없었다. 지난 공산주의때 교회들을 빼앗기고 이제는 창고로 쓰인다. 지금은 이곳에는 150명 정도 모이는 2교회와 집에서 예배드리는 가정 교회들이 시작된다. 저희와 협력하는 KHC교단 전도사 3명이 있다. 정교회와 무슬림 지역으로 여건은 좋지 않지만 좋은 시작이다. 교회 리더들과 의논을 하고 기도회를 갖었다. 내일은 깊은 시골로 들어간다.

12월 1일 (금)

닭우는 소리에 잠을깼다. 간밤에 발을 무는 벼룩이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12월의 아침은 시원하고 신선하다. 낮에는 얼마나 더울까? 한컵의 물로 이빨과 세수를 하고 출발한다. 전기가 없는 저녁, 전전후 화장실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시골 산속 돌짝길을 1시간 여동안 먼지를 날리고 들어가니 전형적인 우막집 여기 저기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이곳에 새벽 기도회가 수, 금 6시에 있다. 나무가지와 흙으로 만든 캄캄한 우막이지만 어린이와 어른이 30 여명이 모여 힘차게 찬송을 부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도회를 마치고 아침을 SIM바나나로 대접한다. 옆사람 눈치를 보면서 시장기를 채우기 위해 내가 먼저 4개를 먹어 치워버렸다. 벌써부터 허기가 진다. 원래 이곳에는 바나나가 없었는데 30여년전에 SIM선교사가 씨를 가져다 심어 이름이 SIM바나나다 되었다한다. 그후 16년간의 공산 정부때에 모든 선교사가 철수 했다.그 선교의 열매가 적지만 영혼의 열매가 남아 기도회를 한다. 다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중간 중간에 깊이 패인 시냇가를 건너고산능성을 넘어 간다. 4륜 구동 짚차가 아니면 더이상 들어 갈수 없겠다. 그것도 삐거덕 거린다. 이제는 더이상 차길이 없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1시간 여동안 걸어서 산속길을간다. 처음으로 믿는 신자를 추수하는 밭에서 만나다. 산길을 차가 들어 오도록 길을 닦아 놓았지만 헛 수고 였다. 이곳에도 20여채의 집들이 보인다. 교회 장로님 댁에서 모였다. 장로님은 소 20마리와 양들을 키우며 비록 나무가지 집이지만 여러채가 있다. 인젤라와 방금 나무에서 따온 꿀차를 탄다. 또 염소를 잡는다. 막 잡은 염소다리 하나를 가지고 들어와 칼로 잘른다. 고추가루에 발라 먹으라고 권유한다. 이것도 먹어야 하는가? 정수가 안된 물, 손으로 밀크치즈을 찍어 먹어야 하는 인젤라 그것도 생고기를 먹어야 한다. 먹자 이제 한국인이 아닌 에디오피아사람으로 적응해야 한다. 숟갈 대신 오른손, 밥대신 인젤라 저녁시간이다. 처음 들렸던 교회에서 닭 한마리를 잡아가지고 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1년에 한번 잡는 귀한 닭이다.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보고가 들어갔는지 비밀 경찰이 왔다.경찰청 허가서를 갖고 이곳을 방문 했는지 묻는다.여행의 자유가 없는가 보다. 아직도 공산 잔재가 남아 보고 체제가 심하다. 스티커를 써주고 경찰서로 가라한다. 이곳은 선교의 씨았이 있어 교회의 기초를 놓고 지붕만 양철로 올릴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단다. 양철 지붕값 3 교회에 80만원이 필요하단다. 이지역은 수단 근처라 새까만 흑인인 앙겔라 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 보호 하기 위해서 총과 칼을 가지고 집단을 이루어 이동한다. 저 앞에는 새까만 아낙네들이 하의만 걸친채 길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사진을 찍자. 저녁 늦게 40여년 동안 신앙을 지킨 70여세의 노인 집에서 철야기도를 한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한다. 아직 이곳은 교회가 없다. 전에 있었던 교회는 공산정부때 빼았아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돌아 오는길 소떼로 교통 혼잡이 계속 된다. 전기가 들어오는 조금 큰동네까지 야간 운행을 해야 한다. 물이 없는 여인숙 1,000원짜리이다.

12월 2일 토

아침 햇살을 머리 위로하고 고잠의 수도인 바하르(Lake) 다르(Border)에 1시간 30여분 달려 왔다. 카다란 호수가 보이고 잘 정돈된 팜추리가 길가에 늘어 서있다. 분위기를 더해준다. 정부 호텔인 타나 호텔에서 3일만에 빵을 먹어본다. 이곳에는 비행장이 있어 우리를 안내 했던 에디오피아인을 미리 삿던 꿀 10KG(1,500원)과 함께 비행기로 보내고 다시 간다. 중간에 차가 섰다. 휘발유가 떨어졌다. 어제 돈을 아끼기 위해 2배로 비싼 기름을 사지 않아서 앵코가 되었다. 기름을 사러간 운전사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햇볕은 따갑고 사람들만이 지나가는 길이다. 오늘은 장이 서는 날이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나무가지, 숯탄, 호박 1-2개를 가지고 온 가족이 읍쪽으로 간다. 모두 맨발이다. 허스름한 옷에 이곳도 빡빡 깍은 여인들이 지나간다. 이곳에 세계적인 타나 폭포가 있는데 곤다르를 향한다. 이곳은 고산지대 뾰쪽한 산 봉우리들을 넘는다. 아이들은 하의를 입지 않는다. 먼지 투성이 길 안경이 먼지로 뒤덮인다. 머리도 아푸고 온몸이 아프다. 얼음을 넣은 콜라 생각이 난다. 아니 시원한 물 한잔, 아니면 정수된 물한잔만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추수기인데 이곳은 몹시 가물고 더웁다. 이곳 사람들은 머리에 이고 나귀등에 싣고 수십 고개를 맨 발로 넘나든다. 1,075KM를 달려와 산위에 동네가 있는데 곤다르이다. 파슬(FASAL)왕가가 1625-1631년 사이에 7대 왕가가 166년 동안 7개의 성을 짓고 전 에디오피아를 다스린 역사적인 정교회 지역이다. 이곳은 2년전에 정교회와 개신교사이에 마찰이 있어 25명이 죽었던 장소이다. 이곳은 75% 정교회와 25%의 무슬렘이 있다.

(검은 부분은 사막 점선 부분은 산악 지도)

* 오순절 교회가 400명 루터란 교회가 200명 메케니 예수수 교회가 150명 그 다음에 15명의 KHC 교회가 전부이다.선교사에 의해서 자란 에디오피아 의사 자매집에서 인젤라로 저녁을 먹고 파슬 성에 50 버(500원) 외국인은 10배이다. 에디오피아운전 면허증으로 현지인 요금으로 들어간다. 파실 왕이 곳곳에 기도실을 만들어 교회가 보이는 창문을 만들어 기도했다고 한다. 고산지대며 날씨기 더워서인지 머리가 지근 거려 파나돌 한개를 먹고 숙소를 향해 여장을 풀었다. 이제 배도 아푸고 몸이 안좋은데 어제 날로 먹은 양고기 때문인가 아니면 계속 인제라만 먹어서 배가 놀랐는가. 언제나 하얀 밥과 김치를 먹어 볼수 있단 말인가? 이곳의 농촌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수도만 보고 결정한 것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못사는 나라가 있었다니. 앞으로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 철저한 정탐을 하자.

12월 3일 주일

6시 30분에 주일 예배를 산위에서 드린다. 왕상 18-19장의 엘리야의 영적 대결이다. 이곳 북쪽 지역이 가장 못사는 지역이다. 가축을 기르고 수수 농사를 짓는데 비가 안오면 굶어 죽는다. 제때에 비가 오기를 기도하다. 지난 85년의 가뭄떼에 200만의 사람들이 죽었을때에도 그 흔한 새들, 개, 죽은 짐승들은 손도 안대는 백성이다.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7시 30분 부터 가장 힘든 산악길를 가야 한다. 곤다르에서 구수도인 악숨까지는 240KM밖에 안되지만 진짜 높은 산들 4,000여 미터를 넘어야 한다.

* (84, 92,94년때의 기근을 생각해본다)
4,620 M의 라스 다센 산을 구비구비 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것인가. 이산을 11시부터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야 땅에 내려왔다. 여러대의 차가 절벽 아래에 떨어져 있다.넘고 넘어가면 절벽과 벼랑이 기다린다.창문을 열어 놓고 자물쇠를 풀어 놓고 달리다 아차하면 창문으로 뛰어내릴 심산으로..서로 창가에 앉은 것을 위안을 삼는다. 점심은 아예 굶기로 하고 출발했다. 가게는 뒤로하고 인적과 차들도 안 보인다. 산 중턱을 지나자 핑크 색깔의 버스들이 보인다. 버스 2대와 트럭 1대 스웨덴 사람들100명이다. 이들은 3달동안 이집트에서 남아프리카까지 버스로 여행한다. 1인당 5,000불씩 경비를 내고 여행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오후 3시가 넘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들의 일행속에 마침 식사를 끝낸 그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요구했다. 먹다 남은 마카로니 너무 맛있게 먹었다. 산속에서 음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르겠다. 참으로 자신의 여행을 위해 3개월의 시간과 많은 경비. 무었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인가? 어떻게 사는것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그 수천 고개를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머리에는 나무가지를 이고 아이를 업고 자녀들은 물통을 지고 거대한 산들을 넘는다. 가끔 절경도 보인다. 깍아 세운듯한 절경 피라밋형의 산들도 많다. 이곳 저곳 곳곳에 분지가 많다. 수십미터의 땅아래 꺼져 있는 벌판. 산능선들을 넘자 마자 푸른 수수 초원이 시원하게 펄쳐져 있다. 싱싱 달리는 차 이제 자갈길이 더 평안하다. 악숨 저녁 6시30분이 되서야 도착했다.오벨리스크, 고대도시 유명한 정교회가 있다. 4일만에 차거운 물도 감사하다. 목욕을 하자.어제 곤다르에서 물린 벼룩이 때문에 온몸이 벌집이 되어 너무 거려웁다. 오늘밤에는 아에 벼룩이 한테 맡기자. 이곳에도 전기가 없다. 이곳 저곳을 찾았다. 자가 발전기로 불이 들어온다. TV를 2달 만에 처음으로 보았다.저녁 6시부터 오르모어, 티그레어, 2시간은 암하릭으로 마지막 30분은 영어로 뉴스를 보내준다. 한개의 언어를 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닌데 86개의 언어를 가지고 사는 나라이다. 언제나 언어 통일이 될련지. 마지막 뉴스에 한구의 데모 모습과 전두환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심각한 모양이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조금전에 이곳의 뉴스도 지난 공산주의 멩기스트 정권하에 수많은 백성들을 죽인 정부 관리들을 대법정에서 심문하는데 모두 부인하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심각한 일이다. 두나라 모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하나님의 치료가 임하길 기도한다. 이곳은 티그레이 부족이고 개신교가 전혀없고 정교회가 강하기 때문에 마리아 숭배를 한다. 국민학교때부터 영어로 배우고 중하교때부터는 영어로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언어도 86개 있는데 영어로 미래를 준비하는 백성이다. 곳곳에 지난 내정으로 전차, 짚차들이 나뒹구러져 있는 것이 격전이 심했슴을 보여준다. 정권의 힘이 얼마나 큰지 말이다.

12월 4일 월

정교회의 본산인 악숨에서 정부 호텔에가서 아침 식사로 계란후라이로 먹고 조그마한 타운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곳은 4세기에 시바 여왕이 세운 Sletta, 오베리스크 1개는 200년전에 무너졌고 한개는 70여미터 웅장하게 하늘을 향해 서있다. 그곳 지하에 6층의 왕궁을 짓고 에리트리아 해변으로 땅굴을 120여미터를 그 옛날에 곡깽이로 팠다고 한다. 이곳 악숨은 100% 정교회 지역이다. 조그마한 동네에 여관마다 만원이다. 이곳 성마리아 교회의 축제기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물려들었다. 이곳에는 AD4세기에 지었던 정교회 건물을 6세기에 무하마드 모슬렘들이 쳐부수었다가 7세기에 재건했던 역사적인 터전이 지금도 남아있고 그옆에 50여년전에 세운 정교회가 있는데 이곳은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여자는 바깥뜰에서 예배드리는 장소여서 남 여가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을 살라세에 황제시에 지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개신교회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수가 없다.예수 그리스도 보다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더 높이 섬기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가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타운을 조금 벗어나 허허벌판을 달린다. 신선한 바람 햇볕을 머리위로하고 1시간 30분여동안 달려 230KM의 다음 목적지로 길을 달렸다. 마침내 새로운 산능선의 길이 뚫려 80KM를 단축할수 있었다. 티그레 부족의 타운인 메켈레에서 5일만에 처음으로 신호등을 만났다. 빨간 신호등이 반갑기만하다. 이곳은 50%의 정교회와 모슬렘들이 있고 정교회 3개 모스코 2개 안식교 1개 그리고 여러성인들을 믿는 미카엘교회가 있지만 참다운 교회가 없는곳이 너무 안타깝기만하다. 이곳은 북쪽 에리트리아와 악숨 그리고 남쪽을 향해 선교 할수 있는 중요한 선교 전략지이다. 어제 주막집에서 물렸던 벼룩이 가려움 때문에 다리에 진물이 나오고 가려움으로 의자에 앉기에 불편하다. 그래도 굵어보자 진물이 빠져나와야 가려움이 없어질테니까. 아니면 물렸던 곳을 손톱으로 누르는 지연이의 비법을 써볼까? 다음 목적지는 랄리벨라까지 569KM의 산행인데 험한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중간 적당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가장 난코스 이다. 큰 산 2개를 넘는데 5시간이 걸렸다. 높은 산을 넘을때마다 깍아 세워놓은 듯한 풍경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서있다. 수도만 해도 8,000피트가 넘는 지역인데 이곳은 높이를 알수가 없다. 더 이상 야간 운행을 할수 없다. 해만 떨어지면 산 강도때문에 쉬어가라고 권고한다. 또 낭떨어지 산들이 굽이 굽이 400여개를 돌아야 한다고 한다. 산 중턱에 미리 와있는 트럭들이 보이고 여인숙에 둘었다 양철 지붕에 소나무 기등사이로 별들이 보인다. 벼룩이 약을 치고 식당에 양고기 뜸스 요리에 인젤라로 저녁을 들다. 내일은 장거리이고 난코스이기 때문에 6시에 출발해야 한다. 이곳 산동네의 특징은 남자 여자 아이 할것 없이 미인이 되기 위헤서 미의 상징으로 칼로 이마에 십자가형을 만드는 것이다. 한 서너살 먹은 아이의이마에는 갓 찢어서인지 피가 고여있다. 장식품 악세사리를 구경한다는 것이 어렵다. 이마에 영구적으로 만드는 것도 절약의 최고의 방법이다. 여자의 머리 특징은 앞은 따고 뒤는 늘어 뜨리는 것이다. 곳곳에서 낙타,원숭이 떼를 만나고 소떼들이 길을 막는 바람에 빨간 신호등아닌 동물 신호등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랜드로바가 산중턱에서 앞서간다. 힘이 좋아서인지 경찰차로 사용한다.이 지방의 집들은 돌로 세우고 지붕에는 짚으로 덮었다. 잠시 쉬어 가는 산중턱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12월 5일 화

산능선을 넘어 허한 골짜기 골짜기 구름속으로 달려 랄리벨라에 도착 했다. 새벽 차가운 공기를 뚫고 6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5시간 정도면 갈수있기 때문에 랄리벨라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기로했다. 식당도 없고 산속이고 빵이나 과일을 북쪽에서 구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아침 햇살이 산 능선너머 빨간 불덩어리가 올라온다. 2시간 정도 달리자 워디야 지역이 나온다. 이곳은 지난 가뭄때 가장많은 사람들이 아사한 지역이다. 지금은 몇몇 단체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의 Save the chilren이 있고 Unicef가 구호활동과 함께 식량 프로직트를 하고 있다. 마차를 교통 수단으로 이용한다. 산능선을 따라 길을 넓힌다. 자갈길이지만 아스팔트보다 편하다. 날씨가 쌀쌀하다. 이제 긴팔이 필요하다. 아침겸 점심을 오렌지와 빵을 구했다. 길을 가다 잘못들어 4시간이나 길에서 소비했다. 이번 여행중의 가장 난코스이다. 벼랑길 수천미터의 산들을 넘고 넘어야 한다. 산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절구에 떡방아 찢고 고추가루 빻는 까만 여인들을 볼수있다. 하루종일 벼룩이 물린것 때문에 가려웁다. 진물도 다나왔을텐데 사오일이 지나야 아물겠지...정부 호텔에 투숙하기로 했는데 물이 30분만에 끊나고 전기도 없다. 침대에서 벼룩이 두마리를 잡았다. 안전하게 죽이는 방법은 물컵속에 넣는것이 가장 안전하다.

12월6일 수 (랄리벨라 워디야 데시의 환락가와 술)

랄리벨라 웅장하고도 대단한 바위아닌 산만한 돌을 조각해서 만든 교회들이 첫 동네에 5개 두번째에 4개 그리고 또 한개가 있다. 곡갱이와 사람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품 그것은 살아있는 신앙을 보여주는 성지이기도 하다. 11세기에 St. Lilibela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 성소와 지성소 커튼 그리고 교회마다 특이한 금십자가를 전통적으로 보관하고 있다. 지금도 교인들이 청소하며 관리한다. 이곳의 입장료는 외국인은 무조건 10,000원 정도의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한다. 이곳에서 개신교인을 찾아 보았다. 개신교인이 있다면 죽이던지 쫓아내라는 정교회 사제들의 무서운 명령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교회가 강하기 때문에 펜대라는 개신교회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전해주는 가이더의 설명이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갔으나 없고 이집 저집을 찾다가 지하 개신교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만나 보았다. 그는 20세의 제켈라는 형제인데 펜대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이집 저집을 전전한다고 한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교회 청소라도하며 평생을 일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 매일 25명이 모여 하우스 교회로 비밀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찬송은 소리 때문에 못 부르고 성경만 배운다고 한다. 숙소로 데리고 와 음식을 나누며 같이 기도하고 한달분의 식사비를 넘겨 주고 바울처럼 일할수 있도록 기도해주었다. 이 형제에게 성경과 전도 책자들을 보내주었는데 성탄 카드를 손수 만들어서 내게 보내어 주었다. 형제와 점심을 먹고 아디스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험난한 난코스를 왔던길을 가야한다. 이제는 비까지 내리며 구름이 몰려온다. 드디어 4륜구동 기어를 넣고서도 비오는 산길에서 미끌어진다. 낭떨어지 밑에는 트럭 한대가 누워있다. 산정상이라 춥다. 잠바를 입자. 소와 양떼를 몰고 가는 사람들 신발을 신지도 아니했다 발이 시렵지 않을까? 전도자는 두벌옷을 가지고 가지말라고 했는데 나는 두벌뿐만 아니라 구두와 운동화 그리고 튼튼한 샌달도 있지 않는가? 진정한 전도자는 나누어주는 연습을 해야한다. 저들에게 줄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었인가? 낙타와 돈키등에 짐을 싣고 여유있게 걸어간다. 깜깜한 저녁 6시가 되서야 데시에 도착했다. 가로등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중소 도시이다. 한쪽에는 보름달 다른 한쪽에는 석양이 떨어지는 이곳은 술과 환락의거리이다.*

(정교회의 사제)

12월 7일 데시에서 아디스로

새벽 부터 부산이다. 아디스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곳에도 SIM선교 스테이션이 있었지만 공산 정부때 배았곁던 곳이다 다시 시작할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50여명이 모이는 교회가 하나 있기도 하다. 아침도 굶은채 산 정상을 향해 달려간다. 교통 체중이 심하다. 소떼 양떼 낙타들이 들판으로 출근하는 출근시간이다. 산 중턱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바나나 콩 차잎사귀 혈압에 좋다고 한다. 보리 튀긴것을 사가지고 다시 출발한다. 점점 남쪽으로 내려 올수록 모슬렘이 강한 지역이다. 대형 모스코가 건축되고 반대로 정교회가 약한 지역이다 데시는 지난 기근때 수만명이 죽어서인지 7개의 비정부기관이 농업 및 나무 심기등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구름이 몰리는 산중턱에 삼 사십마리의 원숭이떼를 오랑우탄이 우두머리로하고 지나간다.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야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 도착 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어설픈 자연에 정들었다. 집에 도착하자 대선이는 고열에 고생을 하고 있고 지연이는 배 앓이를 하고 있다. 이틀이나 학교에 못갔다고 한다. 여행 스케줄이 당겨졌고 중간에 전화가 없어연락하지 못해 일찍 도착한 것을 보고 당황한 아내 제일 받기는 지연이 아빠...내일은 병원에 가보고 변검사라도 해보자.

12월 20일 수

선교 스테이션을 배울겸 온 가족이 랜드크르즈 짚차를 타고 랑가노에 내려갔다. 랑가노는 최근 정부로 부터 돌려받은 선교 스테이션이 있고 호수가 있다. 오르모어를 사용하고 최근 교회를 시작 했고 병원 크리닉을 시작하기 위해서 정부에 서류를 신청해 놓고 있다. 교회 개척과 사역들을 살펴보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내려갔다. 12월의 날씨이지만 포도와 수박을 길거리에서 사가지고 먹으면서 내려 갔다. 아이들은 아직도 멀었느냐고 한다. 200여 KM 4시간거리이다. 북쪽에 비하면경부 고속도로에다 아스팔트 길이 쭉 뻗어있다. 테프를 추수하는 시골의 풍경 소를 돌려서 타작을 한다. 먼산 잘렬하는 태양 간간히 지나가는 작은 타운들. 4시간 여동안 지난 다음 랑가노 호수가 보이고 비포장 시골길로 달린다. 역시 토요다 4륜구동이 튼튼하고 잘달린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호수와 산악들. 도착해서 미국에서 온 선교사 가족인 킴 데니와 두딸, 그리고 그의 아들 알렌이라는 대선이의 학교 같은 반 친구가 있다. 빙햄 기숙사에 누나와 함께 있단다. 그는 아직도 글을 못 읽는다고 한다. 대선이도 괜히 걱정이 된다. 3가족의 선교사와KHC현지인 디렉터가 함께 살고 있다. 이곳 스테이션은 저녁이 되었으나 전기가 없다. 밖에 나무로 불을 때는 오븐에다 피자를 만들어 우리를 환영한다. 저녁 한시간만 제너레이터를 돌려 전기를 켜고 무전 메세지가 끝나는 8시에 전기 없이 호롱불을 다시 켠다 우리가족은 숲속에 나무로 지워진 숙소에서 잔다. 짐승 소리만 들리고 하늘의 별만이 속삭인다. 후레쉬를 켜고 받아든 물로 이빨을 딱고 발을 씻고 자야 한다. 나무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12월 21일 목

새벽녁 수많은 새소리들의 울음 소리에 잠이 깨었다. 대선이와 함게 나와 울창한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따라 가까이 간다. 생전 처음보는 아름다운 색깔의 수십가지의 새들이다. 앞쪽에는 원숭이들이 때를 지워 나무위에서 열매를 따서 아침을 먹고 있다. 힌색과 검은색이 섞인 원숭이들이다. 좀더 가까이 갔을때 원숭이들을 이쪽 저쪽으로 뛰면서 나무 잎 뒤로 몸을 숨긴다. 아침을 먹고 동료 선교사님 가족 아이들과 함께 호수가에서 낚시를 한다. 줄에 낚시를 넣자 마자 90CM의 메기가 걸린다. 4마리의 메기와 붕어들을 잡아가지고 돌아와 이것으로 매운탕 저녁을 먹는다. 이곳에는 전기가 없기 때문에 전기가 아닌 가스를 사용하는 냉장고가 있다. 많은 소떼들이 물을 먹으로 온다 목욕도 시키고 세탁도 하고.

12월 22일 금

아침을 10시에 먹고 아디스를 향해 출발하다. 오면서 인근의 현지인 교인 집에 가서 보았다. 조그마한 오막집에 한쪽에는 짐승들이 자고 한쪽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잔다. 소똥을 밝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허탕이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사진도 찍었다. 옥수수 농사철인가 보다. 한참 바쁘다. 오면서 4통의 수박을 400원씩 사가지고 아디스로 올라왔다. 아디스는 약간 추운 온도이다.

12월 23일 토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이디오피아 친선 점심 식사가 있었다. 초대 받아온 한국 참전 군인들이 100며명 초대 받아 행사를 한다 1950년 부터 1953년까지 6,030명이 참전했는데 123명이 죽고 536명이 중상을 입고 2명의 여성군인이 적십자 장교였다고 전해주며 양평과 전방의 지역들을 한국말로 말하기도하며 중국군인들을 무척 싫어한다. 금일봉을 전해주고 노래자랑과 식전후에는 참전출신 정교회의 깨스의 기도로 행사를 끝내고 한인 학교 설립을 위한 임시 한인회의 모임을 가졌다.

12월 24일 주

크리스마스 이브 첫 순서로 집사람과 아이들 주교 부서가 한국말 성탄절 찬송과 스와힐리로 노래를 불렀다. 주일학교 발표회로 오전 예배는 끝내고 저녁 6시30분에는 캐롤과 연극 기도로 질서 정연하게 캔들 이브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캄파운드안에 성탄 새벽송을 저녁에 한국의 풍습을 따라 방문하다. 집사람은 팝콘과 땅콩 카드를 만들어 집집마다 기쁨을 나누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서 빠졌다. 아니 적응이 안되었는가? 점심은 언어 교사인 킨데와 욥을 초대해서 점심을 먹었다.

선교는 곧 삶이다. 어느 장소에서든 주님을 경배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드리는 것이다. 2,000년 전에 이땅 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을 따르는 참제자의 삶이어야 한다. 그곳이 어느곳이든지 주님이 원하시면 기쁨으로 감당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아프리카의 정글까지 십자가 뿐이다.

기 도 제 목 :

1. 현지인 교회 개척 및 바이불 스쿨 사역을 위해
2.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비자문제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순조로워 질 수 있도록 (정부의 안정)
3. 신실한 동역자들을 순조로히 만날 수 있도록
4. 선교 차량 짚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5. 자녀들의 기숙사 학교 준비를 위해
6. 이곳에 많은 피난민 캠프와 임시 거처에 사는 이들의 안식을 위해
7. 훈련중인 암하릭의 진보를 위해(설교와 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