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선교대회 - 2000년 시카고 선교 대회
(조선일보 글)


地球村을 바꿔놓고 있는 한국 선교사 8200명 (세계 제4위)의 大役事

강인한 생존력으로 세계의 오지와 그늘 속으로 파고드는 선교사들은 대사관, 商社와 함께 한국인의 3大 世界化 거점이 되고 있다

선교활동 지원자가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브라질 정도
식민지 역사, 빈곤의 시절, 황색 피부빛이 선교활동에는 강점으로 작용 현지의 사회 지도층으로 진출한 한국 선교사도…
방글라데시에서는 한국 선교사들이 새마을운동으로 희망 일깨워
몽골~터키까지의 중앙아시아 지역은 인종적 동질성이 강한 한국 선교사의 무대
유목민족 종교인 기독교가 한국인의 유목 민족적 심성에 불을 지피다
기독교-회교 문명충돌의 완충 역할도

金容三 月刊朝鮮 기자 (y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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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뜨거운 열기 / 세계화를 이끄는 3大 집단

주요내용
* 시카고의 뜨거운 열기 / 세계화를 이끄는 3大 집단
* 150개국에 8200명 派送
* 현지 국가의 지도층으로 진출
* 몸을 던져 해내는 정신
* 『우리가 언제 해외에서 다른 민족을 가르쳐 본 적 있는가』
* 방글라데시판 새마을운동 / 마사이族과 더불어 사는 삶
* 우간다-에이즈 보균율 80%
* 대사관이 엄두를 못 내는 일을 한다
* 납치된 외교관 부인 석방시켜
* 기독교와 회교의 문명충돌
* 戰雲 감도는 중앙아시아
* 몽골에만 한국인 선교사 200명 / 고향생각을 않는다
* 기독교와 유목민족적 심성
* 곳곳에서 문화적 마찰
* 南美에선 가톨릭과 마찰 빚어
* 교육사업, 의료봉사, NGO로 위장
* 베트남의 연세대와 이화학당을 꿈꾼다
* 네팔의 코리안 산타클로스
* 육군 대령 출신 선교사 金憲宗씨
* 「金正日 회개하라」 / 한국은 非기독교국에 의해 식민화된 유일한 나라
* 인종적·문화적 갈등의 치유 역할
* 한국 선교사들의 사명 / 재미있는 기독교 통계
* [인터뷰] 柳鍾根 全北도지사
* 金正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요약)

지난 7월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시카고의 휘튼대학 빌리 그레이엄 센터에서는 제4회 韓人 세계선교대회(KWMC:Korean World Mission Conference 2000)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全세계 150여 개국에서 온 700여 명의 한국 선교사와 美洲지역 敎界 대표 3400여 명 등 4000여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대회는 세계적 명성의 기독교 지도자 빌리 그레이엄, 기독교 21세기 운동 국제 총재인 토머스 왕 목사가 명예대회장을, 美洲지역 교계 지도자들이 공동대회장을 맡아 4박5일간 진행됐다. KWMC 사무총장 고석희 목사는 『韓人 세계선교대회는 어느 나 라, 어느 민족도 엄두를 못 낼 정도의 대형 집회』라면서 『한국인의 고질병이었던 종 파와 교단, 세대간의 벽을 초월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 대회 개막 전인 7월20일부터 23일까지 시카고의 노스팍 대학(North Park University)에서는 500여 한국인 선교사들이 모여 제10차 세계 韓人선교사 대회(WKMC:World Korean Missionary Conference)를 열었다. 시카고의 선선한 여름날씨와는 달리 대회 열기는 뜨거웠다. 자기 PR을 위해 이채로운 현지 복장을 하고 나타난 선교사들도 눈에 띄었다. 볼리비아에서 온 崔천휴 선교사는 인디오들의 전통악기와 활, 형형색색의 판초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그는 현지어는 물론 적응교육도 받지 않은 채 종교에 대한 사명감 하나로 볼리비아로 날아갔다 고한다. 아마존 상류인 마모레江 정글지대 에서 7년간 현지 인디오들과 喜怒哀樂(희로애락)을 함께 한 崔선교사는 처음 정글에 들어갔을 때의 일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디오들의 천막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는데, 이 사람들이 나를 놀리려고 그랬는지 곡식과 벌레가 반반씩 섞인 밥을 주더군요. 억지로 밥을 뱃속에 구겨넣고 두 달간 설 사병을 앓았습니다. 정글을 헤매다 악어와 맹수에 쫓겨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회에 참석한 선교사들 중 이런 모험담이 없는 선교사는 거의 없었다.

세계화를 이끄는 3大 집단

시카고 휘튼대학 교정은 한국 기독교의 세계화 현장이었다. 거의 모든 선교사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유창한 현지어 등 2~3개국 語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시카고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국제대학의 朴문규 학장은 『 선교사들은 외국어 능력, 현지 문화권의 이해, 이질적인 인종과의 체험 및 정보량 등에서 세계화의 첨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선교사들은 외교관, 商社 주재원과 함께 세계화를 이끄는 3大 견인차이자 韓民族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傳令(전령)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각국에 나가 한국産 의류와 전자제품, 생필품을 사용하는 모습 을 현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선교 사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 홍보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 국적의 한 목사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선교사 훈련이나 집회가 열리면 정보 관계자들이 참석해 정보를 교환하고,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역할 등 상세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 말했다.

시카고 선교대회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 이들을 척박하고 외롭고 위험한 정글과 사막, 전쟁터와 순교 현장으로 뛰쳐나가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종교적 믿음 이 가족의 안전이나 일신의 영달보다 상위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국제선교회(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국제총재인 에반 데이비스는 선교사 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풍토병 속에서 일했으며, 굶주림으로 고통당했으며, 돌과 매를 맞았으며, 침 뱉음을 당했으며, 죽음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코트 디브와르, 콩 고, 콜롬비아, 태국, 베네수엘라, 가나, 중국 등 수많은 국가들 속에 세워진 교회들은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의 결과다 …. 그들은 40도가 넘는 불볕 더위 속에서 살며,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일하 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납치 위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일하 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외면 한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에이즈 질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열정을 불 태우고 있다>(WEC 기관지 2000년 7월호)

150개국에 8200명 派送

우리나라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알렌이 입국한 시기는 1884년. 이듬해에 언더우드 , 아펜셀러 등이 파송됨으로써 이 땅에 본 격적인 개신교 역사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20년. 韓人 선교사협회 통계에 의하면 국내 기독교 인구는 최소800만~최대 1000만 , 교회 6만개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 다. 배현찬 목사(美 리치몬드 주예수 교회 )는 『세계 50대 대형 교회 가운데 20개가 한국에 있다』면서 『이것이 한국 기독교 의 위상에 대한 증거』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신학자 마이클 그린 박사(옥스퍼드大)는 『한국 교회는 재정력, 높은 교육수준, 명확한 지식 등 세계 선교사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무기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 교회는 현재 세계 150여 개국에 8200여 명의 선교사를 派送(파송)했다 (단기 체류 선교사 제외). 여의도순복음교회 한 곳에서만 51개국에 629명의 선교사를 내보내 현지 활동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한도수선교사(브라질)의 발표문에 의하면 한국은 해외 파송 선교사 수로는 미국, 캐나다, 영국에 이어 세계 4위.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한국이 영국을 제치고 3위에 올라있기도 하다.

시카고에서 만난 한국 선교사들은 월 평균 1500~2000달러를 본국, 美洲지역, 혹은 현지 진출 韓人 교회로부터 지원받아 활동비로 쓰고 있다고 한다. 한 선교사가 한 달에 1500달러를 쓴다고 가정할 때 한국 선교사 들이 해외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총 예산은 연간 1억4760만 달러(1500달러×12개월× 8200명).

이것은 선교사와 그 가족의 현지 생활 및 활동에 필요한 최소비용만을 계산한 것이다. 각 선교단체가 진행하는 학교나 병원 건립 혹은 운영, 특수 프로젝트 진행, 각종 봉사활동 진행에 투입되는 예산을 포함하면 전체 예산이 크게 늘어난다. 경제력과 국력, 인구비례를 감안할 때 세계선교 분야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는 확고 부동하다.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국 선교사를 제외하면 제3세계 선교는 불가 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 공부중인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국 신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학교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兪炳國 선교사(WEC 한국본부 대표)는 『세계에서 선교활동 지원자가 너무 많아 그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훈련시킬 것인지 행복 한 고민에 빠진 나라는 한국과 브라질 정도 』라고 말한다. 金憲宗(김헌종) 선교사(폴란드)는 『우리 선교사들이 외국 선교사들 보다 역량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한국인이라는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양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시절 침략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식민지배를 당한 제3세계 민중들 의식 속에 기독교는 침략 자의 종교라는 등식이 박혔어요. 그 결과 서양 선교사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과거의 식민지로 진출할 경우 강한 거부감 때문에 정착이 어렵고,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인들은 그들처럼 식민지배를 당한 아픔이 있고, 얼굴빛도 비슷하며, 자기들을 지배할 힘도 없다고 믿기 때문에 현지 정착에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어린시절 열악한 생활환 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간의 기초생활 을 보장하는 상하수도와 보건시설, 주거시 설이 갖춰지지 않은 제3세계의 오지, 정글, 산악지대에서 적응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金영화 선교사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그랑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 스아이레스 외곽지역) 빈민촌에서 FM 선교 방송국 운영과 빈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金선교사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이 해외에서 장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金正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요약)

익명을 요구한 한 선교사는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졌을 때 현지 상황 정보 입수는 우리 대사관보다 선교사 들이 훨씬 빨랐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 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나라의 고위 관료, 軍 고위 장성 등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선교사들은 이런 접촉을 통해 그 나라 핵심부의 움직임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은 현지 정착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파송되는 곳은 대부분이 제3세계의 정글, 오지, 貧村, 도시 우범지대, 현지인들에게도 소외받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에서 18년째 활동중인 金宗國 선교사는 한양대 공대 출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뜻한 바가 있어 선교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진정한 현지화를 완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그가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현지 인들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그는 한국어보다 현지어로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하며, 인도네시아 지도층 인사들과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金선교사는 지난해 부활절에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기독교와 가톨릭 연합예배에서 기독교 대표 지도자로 설교를 했다. 金선교사가 현지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는 학사, 석사, 박사과정이 있는데, 제자 목사 1000여 명을 배출해 인도네시아 각지의 지도자로 나가 있다고 한다. 金선교사는 인도네시아 5대 재벌에 속하는 리포 그룹 경영진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하 고 있으며, 재벌들의 성경 연구모임인 「 미션 그룹」에서 정기적으로 강의도 한다. 또 軍 고위 장성, 각료, 정치인들과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선교사 알렌이 고종 황제의 총애를 받아 자유로운 활동공간을 확보했다』면서 『그 나라 리더십 집단에 진출하여 일당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21세기의 바람직한 선교정책』이 라고 말한다.

방글라데시판 새마을운동 / 마사이族과 더불어 사는 삶

한국 선교사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새마을 정신을 심고 있는 곳은 방글라데시다. 한국 선교사들은 모슬렘과 힌두교의 영향으로 기독교 선교활동이 어려운 방글라데시에서 합법적인 체제와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1987년 5월, NGO(비정부기구) 단체인 방글라데시 개발협회(KDAB:Korean Development As sociation in Bangladesh)를 설립했다. 현재 20명의 한국인 사역자, 102명의 현지 협조자들이 방글라데시 각지에서 학교운영, 의료봉사, 직업교육 등을 진행중이다. 농촌개발을 돕기 위해 1990년에 가나안 농군학교 해외분교를 설립했다.

이 나라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60%선에 이르는 문맹. 한국 선교사들은 문맹퇴치를 위해 수도인 다카와 찔마리의 도시 빈민과 시골 아동을 대상으로 초·중등 학교 운영과 컴퓨터, 운전, 정비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9만여 명에 이르는 나환자 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음성 나환자 밀집지역인 울리뿔에 나환자 재활촌을 열어 나병 계몽과 영농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찔마리에 설립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는 농 촌지도자 양성, 시범농장 운영, 농가소득 증대사업을 통해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현 지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기자는 KDAB의 활동상을 듣기 위해 현지 운영 책임자인 장순호 선교사(현재 안식년 휴가를 얻어 美웨스턴 신학원 선교학 박사과정 재학중)에게 취재를 요청했으나 『성경 에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고 쓰여 있다』면서 인터뷰를 사양했다.

마사이族과 더불어 사는 삶

케냐에서 온 朴參日(박삼일) 선교사는 마사 이族과 11년째 더불어 살고 있다. 朴선교사는 육군 소령 출신으로 軍생활중에 신학 공부를 하여 선교사의 꿈을 키웠으며, 軍생활을 마치고 케냐에 진출했다. 그는 군복무 시절 26차례나 이사한 경험이 있는데, 덕분에 케냐로 파송될 때도 새 임지로 전출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떠났다고 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부족들은 문명과의 동화를 택했지만 마사이族만은 수천 년 이어온 전통적 삶의 방식대로 유목생활을 고수하 고 있다. 朴선교사의 설명.

『케냐는 인구 2800만으로 60여 종족이 섞여 있습니다. 이중 마사이族은 58만명으로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큽니다. 그들은 광범위한 마사이族의 땅에 흩어져 유목생활을 합니다. 主食은 소가 제공하는 우유입니다. 때문에 소는 神이 마 사이族에게 준 선물로 신성시하며, 농경부 족들의 소를 보면 무조건 싸워서 뺏어옵니다』 마사이族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기 때문에 삶 자체에 목적의식이 없고, 아등바등 욕심을 부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 다고 한다. 그들에겐 빈부격차도, 시간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朴선교사는 『소의 생일과 나이는 기억해도 사람들 나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아프리카 부족어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관은 있지만 미래를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이 미래 시제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때가 되어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천으로 둘둘 말아 초원에 던져놓는다. 인간도 자연질서의 일부로 믿는 그들에게 가혹한 시련이 닥쳤다. 기상이변으로 비가 오기 않기 때문이다. 4~5년 전만 해도 雨 期와 乾期가 뚜렷했는데 엘니뇨 현상 이후 雨期가 되어도 비한 방울 없이 지나가는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해부터 케냐는 극심 한 가뭄으로 식수 공급이 통제돼 일주일에 몇 시간만 수돗물이 공급된다고 한다. 비 때문에 마사이族들은 生死의 岐路에 서게 됐다. 朴선교사의 설명.

『가뭄으로 초원의 풀이 말라 죽자 마사이 族들이 神처럼 섬기는 소들이 뜯어먹을 풀이 없어 빈사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나이로비 시내로 소 떼를 몰고와 채소밭에 집어넣는 등 난리를 피웁니다만, 소를 배불리 먹이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렇게 되자 소 들이 우유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마사이 族에게 굶주림이 닥쳤어요. 이 시간에도 마 사이族의 노인과 아이들, 여자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몽골에만 한국인 선교사 200명 / 고향생각을 않는다

徐박사는 『몽골에는 약 400여 명의 선교사가 활동중인데 이중 절반이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몽골에 한국인 선교사가 많이 몰린 이유는 인종적 유대감으로 인해 현지 정착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란다. 몽골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語 계통으로서 어순이 우리말과 같기 때문에 한국인은 몽골어를 6개월 정도 공부하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인들은 5년을 배워도 대화가 어렵다고 한다. 한국과 몽골의 동질성에 대한 徐박사의 설명.

『저는 체질인류학을 공부했는데 한국인은 몽골인과 골격구조가 대단히 유사한 반면 중국, 일본인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발견됩니다. 몽골에는 22개 종족이 있는데 그중 한국인과 골격구조가 가장 비슷한 집 단이 바라크族입니다. 이들은 흥안령 산맥의 불가리 지방에 살다 몽골의 세르겔렝으로 이주했는데, 이 지역에 가보니 바라크族은 한국의 충청도·전라도 사람과 똑같더군요. 몽골인의 78%를 차지하는 할카族은 골격구조가 바라크族과는 약간 다릅니다. 고려시대에 麗蒙(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본부가 마산과 제주도에 있었는데, 이 때 많은 혼혈이 이루어져 마산 사람들 중 골격이 큰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체질인류학적으로 볼 때 할카 몽골인의 영향으로 분석됩니다』 徐박사는 몽골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戰士的 기질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몽골인 들은 지금도 戰士의 삶과 사고방식을 유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지금도 육식을 하고 야채를 먹지 않습니다. 야채를 먹으면 생각이 많아 지고 말이나 양처럼 온순한 사람이 된다는 인식 때문에 입에 대지 않는 겁니다. 그들 은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귀를 덮는 모자를 쓰지 않습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적들의 움직임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죠』

고향생각을 않는다

매년 7월에 열리는 나담」축제는 그 자체가 출정식이라고 한다. 말이 살찌고 곡식이 여물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몽골족은 약탈전쟁을 준비하는데, 이때 전쟁 준비상태를 점검하는 행사가 나담이라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외국인에게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속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은 스파이라는 인식이 몸에 뱄기 때문이란다. 徐박사는 몽골이 유목민족으로서 진취적이며 남의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린 사고가 세계 제국 건설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말단 병사들과 격의 없이 대 화를 나누고, 그들 의견을 존중하는 등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몽골 군은 보급부대 없이 스스로 생존 가능했으며, 만리타향에 고립되어도 향수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능 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침략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부분 현지에 정착해 살았어요』

徐박사는 몽골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 면서 우리 민족의 심성 내부에 강렬한 유목 민족적 특성이 살아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 말했다.

『농경민족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며,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유교 이데올로기는 이런 농경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지요. 한국인의 기질 중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습성, 예민한 감수성,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발전으로 이어가 는 현상은 전형적인 유목민족의 습성입니다』

기독교와 회교의 문명충돌

고참 여성 선교사인 金信淑(김신숙) 선교사 는 1977년 3월 이집트에 파송됐다. 남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선교를 위해 이동중, 사막길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순교했고, 현재는 혼자서 활동중이다. 이집트에는 40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사막지역의 베두인족, 아스완 지역의 루비안족을 위해 일하고 있단다. 그녀는 『회교의 본산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서구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를 맡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金선교사는 『이집트 남부의 소하 지방에서 지난 1월2일 회교도와 기독교도 간에 유혈 충돌이 벌어져 25명이 사망했다』면서 『 아프리카 전역에서 회교가 대대적인 선교활 동을 펼치고 있어, 이곳에서 종교적 충돌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다른 선교사들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회교가 사하라 남쪽으로 진출 하기 위해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유건종 선교사(우간다)의 발표문에 의하면 회교는 2020년까지 全세계 인구의 25%인 20억 신자 확보를 위해 120만 명의 지하드 (聖戰) 전사들이 120개국에서 매년 5000만명 이상의 신자를 늘리는 선교사업에 착수 했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 대상으로 선정, 아프리카 각지에 모슬렘 사원과 학교, 병원을 건설하여 어린이들을 모슬렘 戰士로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영선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는 적십자 마크 옆에 회교를 상징하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회교 영향이 대단하다』면서 『도시와 도로를 따라 회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일간지 「네이션」(Nation)의 주인이 회교도입니다 . 아가칸이라는 회교 집단은 막대한 오일 달러를 배경으로 아프리카에 병원과 학교 등을 지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그들 은 「기독교는 가진 자의 종교, 회교는 억눌린 자의 종교」라고 선전하면서 민중의 품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

종교학자들은 기독교와 회교는 따지고 보면 이웃사촌간이라고 말한다. 회교는 서기 570년 무하마드의 묵상과 환상으로 시작됐는데, 이 과정에서 성경이 회교 교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회교는 알라신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네권의 경전, 즉 ▲ 모세 오경인 토라(구약) ▲다윗 시편인 자부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인젤(신약) ▲하나님이 무슬림에게 내린 성서인 코란을 가지고 있다.

코란은 예수를 알라의 28명 예언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회교가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몽골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徐원석(데이비드 서) 박사는 『회교는 기독교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기독교는 1700년대 이전까지 회교를 선교의 대상이 아닌 敵으로 간주할 정도로 배타 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21세기는 東西간의 이데올로기 격돌이 사라지면서 기독교와 회교권의 문명충돌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 기독교 인구(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포함)는 19억명, 회교 인구는 11 억9000만명으로 추산된다. 헌팅턴 교수는 회교도들이 산아제한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 에 2025년에는 기독교 인구와 회교 인구가 비슷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대사관이 엄두를 못 내는 일을 한다

1970년대 이전에는 우간다가 한국보다 더 잘살던 나라였다. 그런데 1972년 이디 아민 이 정권을 장악한 후 인도인들을 추방했다. 그 결과 우간다 경제시스템이 붕괴되어 오늘날에는 貧國으로 전락했다. 이런 일을 체험하면서 아프리카 지도층에서는 「인도인은 필요惡」이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兪炳國(유병국) 선교사는 1985~97년까지 12년간 감비아에서 만딩고族과 더불어 살다 귀국하여 현재는 국제선교회(WEC) 한국지 부장을 맡고 있다. 감비아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쿤타킨테의 고향. 나라 소개를 부탁하자 兪 선교사는 『대학이 없는 나라』라고 소개했다. 감비아에는 대학이 없어 중고교 교사 양성을 못해 이웃의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케냐에서 교사를 초빙해야 하기 때문에 국적 없는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딩고族은 김비아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 하는 대부족인데, 부족마다 언어가 확연히 달라 현재 20여 개 부족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兪선교사의 설명.

『만딩고族은 소박하고 착하기 때문에 강력 범이 없어요. 대신 신발이나 빨래를 걷어가는 좀도둑이 많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을 대할 때 맺고 끊음이 분명한데 한국 선교사들은 情에 약하기 때문에 현지인 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국 선교사를 찾아옵니다』

兪선교사는 『한국 대사관이나 사회단체에 서 엄두를 못 내는 일을 선교사들이 하고 있다』면서 『아프리카 각 나라 주민들은 한국 대사가 누군지 모르지만 한국선교사 이름은 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빈민구제나 치료, 봉사활동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본국 교회의 지원을 받아 감비아 오지에서 농업기술과 목공, 용접과 타자, 컴퓨터,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한국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죠』

이번 시카고 선교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끈 話頭는 북한이었다.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만큼 북한 선교를 주제로 다양한 강 좌가 마련됐다. 스테판 린튼 박사(북한 식량지원단체인 유진벨재단 대표)가 「북한을 향한 그리스도의 大使」라는 주제로, 북한 을 20여 차례 방문한 조동진 목사가 「평화 선교로서의 對北활동」을 강연했다. 또 金 重石(김중석) 목사(서울 사랑교회)가 「북한교회 재건 개척운동」에 대해, 李이삭 목사(모퉁이돌 선교회)가 「북한 선교 평가와 제안」을 주제로 강의했다. 참석자들은 대회기간 중 한 끼를 禁食하여 모은 성금으로 북한 선교 지원금을 마련했다. 대회 폐막일에 발표된 선언문에도 「우리는 북한동포의 복음화를 위해 조국 통일과 선교의 문이 조속히 열리도록 헌신과 도전으로 힘써 지원할 것이며, 온 교회가 합심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다」라는 내용 이 채택됐다. 폐막식에서는 『다음 대회는 평양에서』란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북한 선교와 관련하여 대회장에서의 화제는 李이삭 목사가 발표한 「金正日 회개하라」는 글이었다(박스기사 참조). 李목사는 이 글에서 「金正日은 실패한 정치인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을 범한 죄인」으로 규정하고 「군대와 공산당을 해산하고 무장을 해체하고 항복하여 죄악을 용서 받으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선교사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언론이나 敎界가 침묵하고 있는 이 시대에 발표된 용기 있는 글』이라고 동감을 표하 면서도 『북한의 협박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글을 발표하는 사람이 무사 할지…』 하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한국은 非기독교국에 의해 식민화된 유일한 나라.

기독교는 대단히 공격적인 종교다. 자기 종교를 선전하고 신자로 만들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적극적이며 공세적이다. 덕분에 全세계 곳곳에 그 촉수가 미치지 않은 곳 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신학자 마이클 그린 박사는 『최근 통계에 의하면 全 세계에서 매일 8만~10만명이 기독교인이 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만 매일 2만명 정도가 기독교를 접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학자 마틴 마티는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득세한 것은 19세기부터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 힌두교와 불교, 회교, 가톨릭이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기독교가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 종 교로 성장한 것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西勢東漸(서세동점) 시기,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정부의 지원과 협력하에 「군함과 대포」의 인계철선 역할을 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신학자 루스 터커는 그의 저서 「선교사 열전」에서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앞 잡이 역할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자기들이 봉사하는 나라에서 민주정부 수립, 학교와 병원과 대학의 설립 등 식민지 국가가 근 대화된 국가로 태어나기 위한 정치적 기초를 확립하는 데 애쓰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맹타파, 신분제도 철폐, 미신타파 등을 적극 후원한 덕에 제국주의 운영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는 것이다. 朴문규 학장(캘리포니아 국제대학교)은 『 한국 기독교의 특징은 세계 국가 중 非기독교국에 의해 식민화된 유일한 나라라는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기독교는 나라 잃은 민중들과 고난을 함께 하는 등 민족주의와 갈등을 빚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3·1 운동을 주동한 33人의 애국지사 가 운데 16명이 기독교人이었고, 만세운동이 기독교의 조직망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기독교국에 의해 식민화된 나라에 서는 기독교가 지배자의 편에 섰습니다만, 한국에서 기독교는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섰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됐죠. 그 덕에 한국은 세계 선교史에 기록될 정도의 성 공을 거두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