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텀을 마치고 2기 사역을 준비하며


선교의 비젼 키우기

우리는 보통 선교지에 들어가면 모든것이 술술 풀리게 될줄 안다. 그러나 막상 선교지에 입국하면 예상치 못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선교지에 들어갔을때 첫 느낌은 이것이 아닌데 ..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의 첫 생활은 힘든 생활의 나날이었다. 오후만 되면 기후와 고산 지대의 특성인 산소부족으로 파 김치가 되어 손하나 움직이기가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서 장거리 육상 선수가 나오는가 보다. 맨발의 선수 아베베, 5,000미터와 10,000미터의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게브레 하일레 셀라시에 선수.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없는것 가운데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신임 선교사는 선교지에 도착하면 현지어인 암하릭을 영어 강의로 진행되는 9개월 과정의 수업과 시험에 통과해야 그다음 사역지로 내려가 사역할수 있다. 저희 가족은 비자문제로 언어 학교에 1달이 늦어 언어 교사의 도움으로 오전 오후에 360여개의 암하릭 알파벳을 외우고 시험 보는것으로 첫주를 보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내가 진정 이것을 할수 있을까?하는 자심감 키우기 였다. 동료 선교사들의 격려와 한국인 선교사의 뚝심으로 현지어에 대한 애착이다. 현지어가 아니면 선교지에서 사역의 제한이 많다. 한국인은 현지어에 대한 열심과 언어 적응력이 빨라 언어학교를 마치면 지방으로 내려가 교회 개척과 신학교 사역에 몰두하게 된다.

목회자와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학교에 다니기 전인 유치부때부터 목회자가 되겠다는 소원을 갖고 총신신대원에 다니면서 선교에 대한꿈을 키우던중 GBT의 성경번역 훈련 3기를 받았다. 이때 강사로 오신 칼 렌치 박사님으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16년동안 남미의 한부족에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온 가족이 헌신하는 모습이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외동딸과 함께 한부족에서 헌신할수 있었을까하는 잔잔한 그의 간증이었다. GBT의 법을 위반하면서 성경번역 훈련을 받으며 칼 렌치 선교사님을 모시고 나는 아내와 약혼하고 그 이후 단기 선교팀을 이끌고 무너진 공산권의 나라들인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선교 훈련을 받았다.

선교와 언어 훈련 훈련

선교사는 평생 언어를 배워야만 한다. 영어를 배우고 공용어인 현지 암하릭을 배우고 사역지에 내려 갔는데 그곳에 사는 지역 주민들은 또 다른 언어 오르모어를 사용하고 있고 교회에 가면 보통 6-7개의 언어를 구사해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늘 산재해 있다. 기본적인 언어의 구조를 배우고 늘 언어개발에 힘써야 각기 다른 부족에서 효과적으로 현지인들을 섬길수 있다.

저희는 총회의 선교훈련을 받고 선교지에 들어가기전 영국의 버밍햄에서 영어 훈련을 받다가 9개월 과정의 선교학 석사를 버밍햄대학에서 마치고 선교지에 들어갔다. 이때 함께 공부한 13명의 각기 다른 아프리카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전혀 영어를 하지 못하던 아이들 8살 6살의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또다른 문화 차이를 배우고 선교지에 들어가 대체적으로 잘 적응했다. 언어와 문화는 아이들의 이중 문화 적응시 선교지에서 문화 충격을 줄인다.

아프리카에 적응하기

언어 학교의 마지막 졸업 시험을 마치고 첫 사역지인 에티오피아의 남서쪽인 짐마로 결정했다. 이곳은 아디스에서 8시간 떨어진 남서부의 중심이 되는 조그만한 읍이다. 새로 시작한 선교 스테이션있고 신학교 사역과 교회 개척, 인근에 많은 각기 다른 부족이 있어 첫 텀 사역지로 나에게는 최적격이었다. 커피의 주생산지인 Kaffa(후에 커피의 어원이 되고 6세기에 이곳에서 커피를 발견한 전설이 있음)가 있고 모슬렘인 600년을 다스린 지역이었다. 선교 본부에서는 누가 이곳으로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선교사의 재량에 맡긴다. 자신의 달란트와 하고자 하는 사역에 따라 지역을 결정을 하게 된다. 단 본부에서는 지역을 소개하고 자세한 상담을 지역 담당과 인사 담당 그리고 전도 담당이 함께 숙고하여 사역할 선교 지역을 기도하며 결정하도록 돕고 많은 자세한 자료들을 준비해 준다.

살속에 사는 벌레 이야기

여보, 얼굴이 왜 그래요 ? 화상이 난 것같이 빨갛게 되었어요.
여보, 등좀 봐줘요. 곪은 것 같애. 아니, 이게 뭐야. 웬 구더기같은 애벌레가 살 속에 있네.
여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요. 뭐가 왔나 ? 어디보자. 어, 올빼미가 빨래줄 위에 앉아 있네.

무었이 나를 이처럼 에티오피아를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가? 한번 모슬렘 지역인 보래에 다녀오면 피를 빨아먹는 투환이라는 벌래와 벼룩이로 3-4일은 물파스에 매달리며 잠도 못자지만 매주 이들을 만나고 말씀을 선포하는 나에게 전도자의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때문이다.
에디오피아의 문화와 새로운 언어들을 배우며 짐마에 정착한 생활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되었고 첫 사역지인 짐마에 내려왔을 땐, 알마즈벌레가 날아가며 몸에서 떨어뜨린 가루때문에 얼굴이 따갑도록 부풀어 진물이 나고, 널어놓은 빨래에 망고 플라이가 알을 낳은 것도 모르고 옷을 입었다가 그 알이 살 속에서 애벌레가 되어 곪기도 해 아내가 핀셋으로 등속에 자라고 있는 애벌레를 빼는 실력은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실력이되었다. 이제는 무엇이 어떤 벌레들인지 다 알 수 있다. 3개월동안 천둥을 동반한 우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부엉이와 하이에나의 소리에도 이제는 겁내지 않는다.

한텀을 마치고

지금도 감사하게 느끼는 것은 사역지에 많은 멤버들이 있지만 선교사가 첫텀에 성공해야 장기 선교사로 사역할수 있다는 격려였다. 지난 몇년동안 에티오피아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철수 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건강으로 현지어에 대한 스트레스,예기치 않은 사고로, 선교비 모금으로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들은 준비되었고 헌신했고 여러가지 많은 달란트들이 있는데 그들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돌아가야만하는 것들이 마음이 아팠다. 아뭏든 최대한 첫텀에 성공해 장기 선교사로 나갈수 있도록 돕는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큰 보배임에 틀림 없다.

최대의 협력과 행정과 의료 지원은 선교사가 철저하게 자기 사역에 최선을 다해 헌신할수 있도록 돕는 지원 체계이다. 세계의 여러 선교사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그리스도 아래서 협력하여 팀으로 현지 교회를 돕고 섬길수 있는 것이다. 때로 개인적인 성격차이로 이해심이 없어 고심할때도 있지만 대체로 전체적인 공동목표를 향해 나갈때 모두에게 힘이 되어진다. 물론 항상 장점만 있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국제 선교단체에도 약한 모습과 부족한면이 없지만 않다. 문제를 해결하고 동료로부터 조언을 구할수 있지만 스스로 사역을 혜쳐나가야만 한다. 한국 선교사의 기질인 일의 추진력과 서구 선교의 행정과 전략이 만난다면 최상의 팀을 이루어 선교 사역의 극대화를 이루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첫텀에 해야 할일

무었보다도 현지적응이다. 온 가족이 건강한 마음을 갖고 현지의 문화와 기후 그리고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다. 가족의 적응 없이는 한걸음도 나갈수 없기 때문이며 더욱 장기 사역에로 나갈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할수 있는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개발해 현지 문화에 접목시키는 것에 역점을 두며 배운 현지어의 언어구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해도 현지의 문화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은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단일 문화와 전혀 다른 다문화 다언어 속에서 해야 할 첫번째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텀은 준비시기이며 사역의 가능성들을 살펴보는 모판이다. 우리의 예를 들면 언어를 배우면서 길거리의 구두닦이 아이들을 모아 금요 전도 클럽을 통해 언어도 체크해보고 아이들의 문화와 심성을 배우는 계기를 삼었고 노래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모아 찬양단을 만들어 전도 집회시마다 함께 사역을 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찬양을 통한 사역이 가능한지를 알게 해 주었다. 첫 사역이 신학교에서 가르키는 일을 맡았을때 2시간의 강의를 위해 1주일을 투자해 암하릭으로 읽고 쓰고 강의안을 만들어 언어의 향상을 위해 노력 해야만 했다. 주말에는 교회를 방문해 함께 자고 먹고 하면서 저들을 섬기며 가르켜야 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부족을 답사해 지도자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며 신학교로 입하기켜 정규 지도자로 만드는 일이 또한 중요한 사역이었다. 한국의 단기 선교팀이 올때에 훈련된 찬양단과 현지 교회들과의 협력으로 집회도하고 교회도 건축하고 인형극과 예수 영화 전도 책자를 만들어 이들을 효과적으로 섬길수 있었다.

1) 선교지 에티오피아

93년 선교지 답사및Vision Trip 때 다녀온 '루마니아'를 마음에 두고 선교지로 준비하던 중, 93년 왕성교회의 소말리아 돕기 행사에서 모금한 구호품을 전달하러 소말리아에서 1달간 사역을 돕던 것이 아프리카를 경험한 첫계기가 되었다. 소말리아 방문 후, 에디오피아에는 5일간 잠깐 지나는 길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선교지로 결정을 했다. 한국과 문화적으로 같은 부분이 많고 심성도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동기는 에디오피아 남부의 한 교회를 우연히 방문했다가 기도모임을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을 우연히 만난데 있다. 자기들을 훈련시켜줄 선교사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의 간청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에디오피아 방문 후, 그들의 눈망울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산화에서 민주 정부로 바뀌고 지하에서 신앙생활하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있었고 에디오피아 삼면의 주위에는 모슬렘 국가들로 둘러 쌓여있고 45%의 모슬렘과 40%의 정교회에 대한 도전이 내게는 무척 큰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2) 에디오피아의 문화적 여건

에디오피아는 문화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것이 많다. 우리 조상들처럼 하얀 옷을 즐겨입는다. 초가집에서 한 가족이 한 방에서 함께 살고, 때로는 한방에서 가축과 함께 살기도 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존대말을 쓴다. 혈연, 지연의 유대관계가 강하여, 결혼,장례및 집안,동네의 대소사에 친척, 이웃이 모두 함께 돕고 산다. 손님이 오면 좋은 것으로 대접하고 우대하는 것은 우리와 같다. 음식은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주식인 인제라와 함께 오른손으로 먹는 '와뜨' (반찬)속에는 항상 마늘과 고추가루가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인은 누구든지 금방 좋아하는 음식이 된다.

3) 에디오피아의 문화적 여건

에디오피아는 4세기 이후로 전통적인 에디오피아 정교회 국가이다. 그래서 모든 문화에 정교회의 습성이 깊이 배어 있다. 그럼에도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무시하지 못한다.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서 조차 정교회 건물과 이슬람사원은 흔히 볼 수 있다. 개신교의 숫자는 정교회와 무슬림에 비해 미미하지만 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에디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 위로 북쪽은 99%가 정교회 지역이라 개신교 신자가 발각되면 아무도 모르게 살해된다. 북쪽에는 선교사가 쉽게 들어갈수 없다 에디오피아 남쪽은 정교회도 강하지만 부족마다 모슬림이 더 많이 분포되어 있고, 케냐국경 가까운 남쪽의 지역은 거의 전통종교의 지역으로 아디스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문명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부족들의 수가 많아진다.

최근 지난 97년 4월에 남부 무슬림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사역하던 덴마크 여간호 선교사가 납치되어 잔인하게 목이 잘려 살해되었고,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2개의 정부호텔과 외국인이 자주가는 한 레스토랑이 폭파되었는데, 극단 ㅁ. ㅅ. ㄹ. 들(?)에 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 짐마에서 2시간 걸리는 선교스테이션이 정부에 의해(ㅈ ㄱ ㅎ 와 ㅁ ㅅ ㄹ들의 압력?) 이유없이 그곳에 있는 신학교와 모든 건물들이 압류당했다.

지난 97년 10월에는 아디스에서 남쪽으로 하루 걸리는 알마민츠지역에 대규모 개신교회 연합 부흥집회에 정교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100여명 이상의 성도들이 돌에 맞아 중상을 입고, 한교회는 처참하게 불살라졌고, 다른 한교회는 처첨하게 파괴되고, 헬리콥터 미션이 공격을 받아 모든 공구와 기구들을 도난당하는 사태가 벌어져 긴급 출동한 군부대가 진압하는 과정에 주동이된 정교회 사제 3명이 사살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은 정교회의 개신교 성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볼 수 있어, 탄압속에 개신교가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4) 대선이와 지연이에 대한 교육

대선이와 지연이는 각각 국민학교 5학년, 4학년으로 SIM mission에서 운영하는 선교사 자녀학교에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가 짐마에서 사역하고 있는 관계로 대선이, 지연이는 아디스에서 학교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기숙사 안에는 현재 4명의 남자 어린이와 3명의 여자 어린이가 있어 기숙사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2명 있는 카나다 선교사 가정에 의탁되어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연습이 되지 않아 많이 울고 힘들어 했는데, 이제는 잘 적응하여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을 3개월에 한번씩 보는것이 원칙으로 되어있다. 올라가 만나보면 손발의 때와 머리속의 이는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한국문화와 전혀다른 가정에서 독립심을 갑자기 키우려니 어린 아이들에게 좀 심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이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으로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떠날 때보다 키가 많이 크지는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많이 성숙했고, 또 믿음으로도 성장하였다. 지연이는 지난 달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기뻐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또 다른 문화속에서 갈등하며 적응하기를 힘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바라보며 기도할 뿐이다. -엄마 아빠는 여기 계시고 우리에게는 비행기표를 사주세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것이 편하겠어요-대선이 지연이의 요청이다.

선교사역의 단기, 장기적 Vision

1) 현지교단과 협력사역 및 국제선교단체의 도움으로 인한 선교전략 키우기

에디오피아는 못살고 없는 나라처럼 보여도, 공산정부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여 선교가 만만치 않다. 어느나라인들 선교가 쉽겠는가? 아프리카는 선교하기 쉽다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현지교단과의 헙력하에 사역을 진행해야 하고 또 이곳의 유일한 국제선교단체인 SIM (Society for Int'l Ministry)의 도움없이는 언제 어떻게 정부에서 추방당할지 모른다. 집이고 건물이고 소유물을 언제 정부에서 압류해 갈 지 모르기 때문에 단독선교는 살아 남을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다. 또한 국제선교단체와의 협력은 그들이 이곳에서 쌓은 노하우인 고도의 선교전략을 배울 수 있어 신변의 보장과 Visa문제해결 뿐 아니라 실패의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2) Bible School 사역을 통한 현지 지도자 양성

암하릭 10개월 과정을 끝내고 작년 9월 무슬림 전통지역인 짐마로 사역지를 정하고 짐마 Bible School 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짐마 Bible School 사역은 신학생들이 짐마 남,서부 각지역 교회에서 후원을 받았거나, 혹은 선교사의후원이나 자비로 온 학생들로 그들이 교육받은 후 자기 지역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또 주변지역의 복음화에 귀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 에디오피아 남서부의 복음의 산실이 된다. 왕성교회에서 모금하여 세운 Bible School은 아니지만 우리가 협력하는 현지 에디오피아 생명의 말씀교회 (KHC)교단 산하 Bible School로 이들을 양성할 교사들도 없고 재정도 없어 현재 현지인 다이렉터 1명과 3명의 선교사(저희부부와 미국의 한형제)들이 Team으로 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우리부부는 이곳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암하릭의 진보를 위한 기회로 삼고 있지만 Bible School 사역을 통해 사실 이들에게서 문화와 지역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외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어 오히려 배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텀 사역을 통해 다음 텀의 발전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3) 현지 지도자 양성을 통한 미전도 종족 전도 및 교회개척사역

Bible School 학기중에 주말과 방학엔 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고향을 방문하거나, 미전도지역을 방문하여 전도활동을 함으로 그들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현지 지도자 양성은 선교사 없이도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에디오피아는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물질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유혹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물질로 그들을 돕는 일이 단기적으로 열매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를 내어 현지교회들이 게속해서 선교사들에게서 물질의 후원을 받으려는 기대감을 키워 독립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낫는다. 한국 선교사들이 무조건 파송을 받으면 파송교회의 이름으로 교회를 하나 설립하면 다된다는 식의 선교는 통하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누구든지 이곳에서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선교를 오랜동안 받아온 나라이기에 선교사의 얄팍한 상술을 다 꿰뚫고 있어서 션교사가 이용당하기 쉽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지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개척, 설립할 수 있도록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에디오피아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4) 주일학교 교사훈련 프로그램을 통한 무슬림, 정교회 어린이 전도사역

에디오피아는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를 미래의 꿈으로 보지 않을 뿐더러, 주일학교교육과 어린이 전도는 전혀 생각해 내지 못한다. 어른들과 함께 3시간동안 꼬박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게 전부이다. 예산도 없지만 더더욱이 가르칠 교사가 없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훈련 프로그램만으로도 앞으로의 에디오피아 교회교육이 차원이 달라지는 게기가 된다. 그것은 곧 교회교욱뿐아니라 무슬림, 정교회 어린이 전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5) 짐마 주변의 대학생 제자훈련을 통한 학원 복음화와 졸업후 자기부족의 복음화

에디오피아는 고등학교 졸업후에 대학진학을 위한 큰 시험이 있다. 성적에 따라 자기 의견과 상관없이 각 대학으로 배정이 되고 일단 배정이 되면 등록금일체와 기숙사비가 모두 국가에서 제공이 된다. 그래서 각 대학엔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섞여있고, 이들은 이나라의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짐마내에도 2개의 단과 대학과 1개의 의과 대학이 있는데 이들의 제자훈련은 학원내 복음화는 물론 각 학생들의 지역 복음화에도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지난해에 함께 성경공부한 7명의 교대학생이 졸업을 하고 각기 다른 부족으로 가 교사로 사역하면서 지도자로 세우는 사역도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 그램이 대학내의 성경공부반이 늘어나 각기 다른 언어와 부족의 지도자로 세우는 일들이 시급하다.

나의 사랑 보래 이야기 -모슬렘 지역에 세워진 교회 개척 이야기

보래라는 이름은 산속에 있는 한 무슬림 지역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믿음있는 형제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보래교회는 나의 첫사랑이다. 보래교회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자다가도 벌떡일어난다. 보래교회는 한명으로 시작해서 40여명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초대 공동체처럼 한형제처럼 지낸다.

무었이 나를 이처럼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가? 한번 보래에 다녀오면 피를 빨아먹는 투환이라는 벌래와 벼룩이로 3-4일은 물파스에 매달리며 잠도 못자지만 매주 이들을 만나고 말씀을 선포하는 나에게 전도자의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번째, 그것은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께 헌신하려는 형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주님을 발견하고서 가족의 핍빅과 집에서 쫏겨난다 할지라도 십자가 신앙으로 살려고하는 형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이 개척 교회를 가기란 쉽지만 않다. 그래도 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그들은 나의 첫사랑이기 때문에 항상 첫째이다.

보래교회 가기;
우리집은 짐마의 산중턱에 있다. 앞에는 타운이 보이고 뒤에는 산들과 모슬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 있다. 뜨거운 햇볕을 뒤로하고 걸어서 미니버스 정류장까지 차를타고 30분 그리고 마차를 타고 산을 넘고 계곡을 넘어 산속 보래로 향한다. 호수가 있는 곳까지 가다가 더이상 길이 없는 곳부터 걸어서 걸어서 보래로 향한다. 탠트와 물병 그리고 슬리핑백에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모자는 기본이다.

나는 보래교회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검은 사람들중에 유일한 네찌 프렌조(하얀 외극인이라 부름) 의사가 아닌 의사로 그들의 몸속에 사는 벌래를 빼주는 의사이다. 주로 등의 살속에 있는 벌레를 칼로 빼고 연고를 바르는 것이 전부이다. 남자나 여자 누구든지 옷을 벗어 제치고 등을 들이내 민다. 일명 망고 프라이라 하는데 옷속에 낳은 알이 살속에 집을 짓고 살을 먹고 자란후에 퉁둥하게 부어 오른다. 나도 짐마의 첫해에 살속의 벌레로 고생을 했으나 진짜는 나의 아내가 전문가이다.

나의 사랑 시사이

시사이는 12살먹은 남자아이인데 학교도 가지 못한체 남의 집에서 살고 있는 반고아소년이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웃에 있는 엄마로 부터 쫓겨나 아토(Mr) 맘모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며 얻혀 살고 있다.그래도 제일 좋은 신앙을 가졌다 요즘 목에 결핵성 상처가 1년째 낳지 않아 기도하고 있다. 약을 발라주고 치료해 주어도 낳지 않는다. 요즈음 얼굴에 미소를 띠고 다닌다.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 있다.

나의 사랑 아토 다윗

보래 교회에서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하는 60-70세 정도의 형제이다. 펜대(예수쟁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식둘로부터 쫓겨나오셨다. 우리가 항상 교회 사역을 마치고 돌아때에 읍내에 까지 1시간 2시간 걸어서 배웅을 해주신다. 비록 두발에 병이 들어 힘들어 하신다. 물이 좋지 않아 두발이 퉁퉁붇고 고름이 나올 정도로 상처가 심하시다. 물론 양말도 신발도 없으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많은신 우리 할아버지이시다.

보래 교회는 언어의 천재들이다.

보통 4-5개의 언어에다 7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암하릭과 오르모어가 주 언어이고 예배때와 찬양때에는 그외 다른 언어로도 찬양를 부른다. 보래는 산속에 있으면서 주로 커피와 옥수수, 소를 키우는것이 주된 직업이다. 물론 전기도 없고 우물도 없어 저 멀리 흘러 가는 냇가에 의존한다.

보래교회의 사역

수요일 오후에는 30여명의 아이들이 미리와서 기다린다. 지친몸이지만 요나스 전도사와 함께 말씀을 가르키고 이들은 오르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암하릭을 가르치기도하고 나는 말씀과 함께 준비해간 색종이 접기로 비행기도 만들고 배도 만들며 하나님나라와 노아방주 이야기도 나누지요.

전기가 없는 저녁에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성도들이 모이면 예배시간이 되어 호롱불 아래에 모여 쥰비해간 테이프로 찬양을 듣고 말씀을 전하고 밤늦게 까지 기도회를 갖고 함께 교회바닥에 거적을 깔고 잔다. 요절도 외우고 간증도 나누고 40여명이 성령으로 충만한 밤이 된다. 저녁은 12시가 되어야 먹는다. 이곳에 고약한 벌레는 투환이라는 벌레다. 벼룩이보다 강하고 온몸에 돌아다니며 피를 빨아먹는다. 한번 다녀오면 3-4일은 고생을 한다. 아침에는 기도회로 모인다. 이웃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 커피와 옥수수 튀긴것으로 아침 교제가 있다. 돌아 가면서 하지만 교회에서 더 많이 한다. 누구든지 와서 커피도 마시며 집안이야기를 나누는 이곳의 전통이다. 나는 이곳에 찬양 테이프와 주일 설교를 녹음해가지고 가서 아침모임시간을 전도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두 주 전에는 한형제가 주님을 영접했고 두손을 들고 영접기도를 했다. 이런 기쁨 때문에 보래교회를 찾는지 모른다.

보래 교회는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집사도 없고 구성원이 약하다. 한형제가 쿨릴냐부족에서 복음을 듣고 이곳으로 오면서 복음의 문이 열렸다. 지난해에 한성도가 가장 좋은 밭의 일부를 하나님께 헌신했다. 비록 나무 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양철비붕을 올려 비를 막을수 있으나 아직 창문을 달지 못해 바람은 막을수 없다.

지난 97년 1월 한국의 사랑의 봉사단(황성주 박사)에서 단기선교로 중,고생과 청년 11명이 이곳에 와서 그들이 준비한 헌금으로 양철지붕을 올리고 진흙으로 벽을 세우고 강대상도 만들고 바닥에 시멘트 대신 소똥을 발라 광을 내기도하고 시멘트를 대신하기도 하지요. 이때 3일간의 저녁 전도 집회를 통해서 2명의 모슬렘이 주님을 영접하기도 했다.

나의 사랑 보래,
그곳에 사랑이 있고
주님이 계시고
모슬렘인들에게도 다가서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밤 하늘에 별들과 함께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들
비록 없는것이 많지만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것이 있음으로 감사할줄 아는 형제들

언어의 천재들

각기 다른부족의 언어로 찬양의 은사를 받은 형제들
주님의 위대 하시을 목청 높여 외치는 아주머니들
누가 이들에게 복음을 이제서야 다가섯단 말인가

그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