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II in Ethiopia- 골디에 부족을 찾아서


MIssion II in Ethiopia- 골디에 부족을 찾아서

Rev. Jong Kook & Grace Eun Hye Park
PO Box 127 ,SIM
Addis Ababa, Ethiopia, AFRICA
Tel & Fax: +251-1-711 594 (home)
E-mail:cushjkpark@hotmail.com
http://ethiopiamission.hypermart.net/index.html

1. 말콤 헌터: 영국/미국- 노메딕 전문 선교사로 영국에서 노매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노메딕을 따라다니며 리서치하고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 일하고 있다.

2. 벤 스케그: 미국 선교사로 에티오피아의 남서부지역의 미엔언어에 능통하고 그 부족에서 5년동안 사역하다 12,000명이 세례받는 사역을 하였고 오토바이, 차량운전과 정비에 도사이다. 미엔 부족이 일부다처제를 하고 있어 그가 교인들이 세례받는 데 금지된 그 일부다처제를 동의하여 다른 지역으로 선교지를 옮겨야만했는데 말라위로 옮겨갔다.

3. 박종국: 한국사람으로 현지 공용어인 암하릭을 구사하고 신학교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 다양한 미전도 부족을 리서치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전공자이다.

골디에(Goldiye) 부족을 찾아서 떠나기전 여러분에게 기도부탁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여러분의 기도가 강했는지 죽기까지는 안갔지만 온몸에 중상을 입고 종합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저희 선교단체의 의사를 만나 진단을 한결과 몸의 수 많은 상처때문에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안전할것이고 오른쪽 어깨는 팔걸이를 하고 병원에가서 어깨와 앞가슴을 X-레이를 찍을것을 진단해 어깨와 앞가슴등 2번씩 4번 찍었습니다. 진단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충분한 휴식과 파상풍과 말라리아를 위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다는 진단이 최종적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골디에 부족을 찾아 떠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골디에 부족까지는 4륜구동 짚차로 꼬박 3일길을 달려갔습니다.아디스를 떠나는날 길 중간에는 수 많은 차들이 사고로 여기저기 낭떨어지에 박혀있었습니다. 더욱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함께 동행하는 벤 스케그 형제는 아침 내내 운전 면허증 발급이 되길 위해 기다렸지만 면허증이 발급되지 않아, 3일길을 저 혼자서 운전하며 내려가야 했습니다. 저녁무렵 도착해야 할 소도 타운이 보이지 않고 다른 노선이 보여 길을 물어보았으나 이미 60KM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나라는 이정표가 없어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없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물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가기는 길이 너무 험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선두차인 말콤박사 일행과 두번째 타운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이미 늦어버려 중간 타운인 소도까지 가기로앴습니다. 가야하는데 저녁 길이라 길가의 소떼들이 풀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길마다 소떼들이 차를 막고 있고 사람들도 깜해 발발기어가야만했습니다. 저희 선교본부는 해가 떨어지면 이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어찌할수 없이 가야만했습니다. 늦은 밤에서야 길을 물어물어 월레이타의 타운인 소도의 저희의 선교 스테이션을 찾아야했습니다. 이곳은 선교를 시작하고부터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고있는 선교사무실을 밤 늦게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아담 박사를 만나 아담 부인이 손수 만든 보리 빵과계란으로 점심겸 저녁을 먹고 그곳의 선교사역을 나누고 게스트하우스에 잠을 청할수 있었다.

다음날은 주일이지만 각자 말씀을 보고 묵상의 시간을 나누고 주일 아침 새벽 일찍부터 출발해 그날은 금식을하고 말콤 박사를 만나기로한 아르바민쯔로 가느데 길이 너무 좋아 신나게 달릴수 있는 길이지만 새벽부터 소떼들이 먹이를 찾아 길을 막아 힘을 낼수가 없었습니다. 아르바민쯔에서 말콤박사와 동료들을 만나 길을 만들 공구와 차에 기름을 채우고 거기서 우리차에 뉴질랜드에서온 린넬자매가 그 좁은 차에 함께 끼여 머르시 부족까지 가야만했습니다.(벤과 그 자매는 상당히 무게가 나가고 나의 2배는 차지한다. 나는 그래도 운전을 하니까 자리싸움은 않해도 된다.) 실은 린넬자매와 그의 남편은 우리가 언어공부할때 함께 공부하기도 했는데 그후 머르시 부족에서 간호사로 엔지니어로 일하다 본국으로 말라리아로 인해 후송갔으나 다시돌아와 더 이상 머르시 부족에서 일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하기 때문에 이삿짐을 싸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클리프 형제는 그곳에만 가면 힘이 없고 머리가 아프고 말라리아와 싸워야만 했다. 그 부족을 사랑하지만 더 이상 말라리아 지역에 가지 못한다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허허 벌판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들보기도 힘들다. 종종 원숭이떼들을 만나면 심심찬게 갈수 있었는데 종내보이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반나의 여인네들이 태양빛아래서 비를 기다리며 옥수수 씨앗을 땅속에 묻고 있을뿐이다. 한곳에서 옷벗은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내려갈 차길이 없나보다 차길이 끊기고 시냇가를 건너야했고 길이 빗물에 힘쓸려가 쇠 철판으로 임시길을 만들었지만 힘들다. 왜 이렇게 더운가? 여기가 아프리카가 맞은가? 바람한점 없던 길에 왠 강한 더운 바람이 몰려오는가. 얼마나 떠거운 사막의 더위인가 산길을 내려가면 지옥을 연상할수 있고 산악길을 올라가면 천국을 소망케 한다. 찬송가가 저절로 나온다" 왠말인가 나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어둔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일할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얼마나 더운지 찬송가가 저절로 나온다. 오후 3-4시가 되었지만 구멍가게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만치 달려가니 뜨거운 길위에 아프리카식 오두막 집이 나왔다. 그곳에 가서는 무었이든지 먹기로하고 멈추었다. 아니 사막길에 왠 차거운 코카콜라가 있는가? 오아시스임에 틀림없다. 발전기를 돌려 차갑게 만들어 배의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또 다시 뜨거운 아프리카의 열대의 온풍을 뚫고 두번째 묵어야할 진카로 가서 일행들을 만나 숙소를 2달러에 예약을하고 뒤에 실은 오토바이를 다시 묵고 계란4개를 저녁으로 먹고 다음 날을 준비했다. 마침 강한 바람과 비가 몰려와 머르시부족과 골디에 부족에 들어가는 걱정을 했지만 많은비는 오지않아 다행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출발해야만 했다. 지난 밤에 비가 내려 길을 들어갈수가 없어 들판을 가로 질러 가야만했다. 드디어 산악 운전에 용한 벤형제가 운전대를 잡고 달려가지만 5KM이상의 속도를 낼수가 없다. 너무 너무 높은 산들을 넘어가야만 한다. 머르시 부족까지는 90KM 오전 내내 달려가지만 끝이보이지 않는다 5-6개의 산들을 넘어 아프리카의 평야를 달린다. 사슴들도 보이고 들소 수많은 짐승들이 숲속을 왔다갔다하며 차길을 막는다. 시냇가 개울을 건너 들판에는 머르시 집들이 보이고 농사를 위해 불을 지펴 태웠다. 여인네들은 하채만 소 가죽으로 가리고 남성들은 벌거벗은 채로 일하며 저의 동료선교사인 자매를 손짓하며 환영해준다. 이어 저희 선교부에서 운영하는 크리닉과 콘테이너로 조립한 선교사집이 보인다.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대 수많은 머르시부족(여인네들의 아래 잎술에 구멍을 내어 나무원형판을 끼고 사는부족)민들이 몰려오고 있다. 남성들은 전나로 총을 하나씩 메고 오고 여인네들은 아래잎술에 나무원판을 끼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줄을 서서오고 있다. 이유인즉 외국인들이 왔으니 환영도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약간의 용돈을 벌기위해서이다. 사진 한번촬영 모델에 보통 300원이지만 나에게는 한사람당 100원씩 제의를 한다. 간호사 선교사집에서 점심을 빵과 우유로 먹고 또 다시 마지막 목적지인 한나 타운으로 가야만 한다. 숲속길을 가로 질러가는데 9마리의 얼룩말떼가 숲속에서 한가로이 먹이를 먹고 있고 들소떼들이 허거지겁 달려가기도 한다. 어제 말콤 박사는 사자를 보았고 다른 동료는 코끼리도 보았다는네 우리 앞에는 보이지 않아 잔뜩 긴장을 하고 가야만했다.

한나 타운에 도착 했는데 말콤박사 일행이 벌써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있었다. 우리도 짐을 풀고 텐트를 치고 오두막 교회에 들어가 기도도하고 더위도 식혔다. 최종 목적지이지만 이제 선교 사역이 시작된다. 저녁은 파스타로 기름을 발라 먹었다. 저녁에는 우리 일행을 반겨주는 강풍과 소나기가 나려 3개중 나의 텐트만 남고 모두 바람에 날아갔다. 벤 형제만 나의 텐트로 왔고 다른 일행은 소똥으로 만든 오두막교회로 들어가 잠을청하고 다음날 아침은 현지 소젖에 밀가루를 말아 아침을 먹고 오모강을 탐사하기 위해 출발했다. 숲속의 소떼길을 따라 나무들을 자르고 길을 만들고 15KM를가는데 2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오모강은 건기로 인해 가슴까지 물이 찼다. 벤 형제와 두 미엔 전도사가 강을 헤엄쳐 건너 저 너머에 사는 부족을 먼저 탐사하고 새 활주로를 만드는 가능성을 탐사했다. 결과는 활주로로 땅은 좋은데 돌들이 많아 모두 치워야한다는 것이고 그곳에는 보디 부족들이 살고 있는데 남쪽의 또 다른 히디 부족민들이 인근까지와서 동료부족인들을 죽이고 소떼들을 잡아가서 이번주면 이부족들도 또 다른 곳으로 소떼들을 이끌고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일단 한나로 철수 하고 기도하기로 했다.

두번째 도전
새벽에 일어나 함께 기도하고 텐트와 음식를 가지고 출발한다. 문제는 두대의 오토바이를 가지고 가야하는데 한대를 가지고 갈사람이 없다. 드디어 내가 그 250CC한대을 운전해야한다. 평생 한번도 운전해보지 않은 오토바이 10분만에 배우고 들판을 따라 달려가야만한다. 시원하기도하고 흥분이 된다. 얼마쯤 숲속을 통과하다가 작은 시냇가를 건너야하는데 앞에 가던 벤형제가 멈추지 않는가. 나는 그만 시냇가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고 쳐 박았다. 주여 가슴만 아픔니다.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상의옷이 찢어져 있지않은가? 다시 벌떡일어나 다시 시동을 걸고 벤 행제를 따라달려 갔다. 시원한 평지를 한참 아무일없이달려가다 이제는 자갈밭에 오른쪽 다리가 끼워 넘어졌다. 다리가 절이고 어깨가 뭉클하니 무겁기 시작한다. 앞서가던 벤형제가 돌아와 나만 보면서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기도하고 있었다나. 도움보다 기도의 위력이 더 컷다. 나는 더이상 오토바이를 운전하기를 포기하고 말콤 박사에게 주었다. 그는 60대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하게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그날 저녁은 수요일 저녁 함께 기도 시간을 갖는다. 기도는 땅에 앞드리고 기도하는데 덥고 지치고 그저 은혜스러워 내 기도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이날 저녁은 머르시 부족에서 3명 보디 부족에서 4명이 참석했고 아이들을 합하면 20여명이 함께 모였다.

세계에서도 몇번째로 길다는 수천KM의 오모강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다시 오토바이를 차에 싣고 오모강을 건너야만했다. 오모강을 건넌후 다시 벤과 나는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보디 부족들이 살고있는 지역까지 달려갔다. 그곳의 원주민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이곳에 활주로를 만들고 비행기가 오가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화가 온다고 설명하고 함께 경비행기 활주로를 만들기로하고 오토바이를 그곳에 맡기고 준비해간 옥수수 한부대를 선물로주고 함께 그 뜨거운 태양아래서 가로50미터에 세로250미터의 활주로를 만드는데 아이들과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남성들은 나무 밑에서 쉬고 있지 않은가? 말콤 박사는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한다고 한다. 아침에 다친 다리와 어깨가 무거워 어찌할수 없지만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길위에 있는 돌들을 치워야만 한다. 점심 시간도 없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활주로 공사가 끝나고 다시 오모강으로 돌아가 물속에서 쉬고 점심은 말콤박사가 만든 수프를 맛있게 먹고 한나로 다시 돌아가지만 돌아가는 길을 찾을수 없어 몇번이나 길을 잃로 소떼길을 찾아 캠프로 돌아올수 있었다.

저녁은 Medcines Sans Frontier에 일하는 형제들이 우리 일행을 초대해 양을 잡아 장작불위에 구어놓고 망고 쥬스로 우리를 대접했다. 얼마만에 먹는 고기 인가? 2-3인분을 순식간에 먹어 배를 채웠다. 먹자마자 동료선교사는 함께자다 이웃텐트로 옮겨갔다. 이유인즉 배탈이 났다. 나도 설사를 시작한다. 그 동안 오모강물도 먹고 원주민들이 주는 소젓을 생으로 마셨는데 갑자기 고기를 먹어서인가 보다. 들판의 화장실을 찾는것이 고역이다. 너도 나도 일을 봤기때문에 좋은 장소를 찾기도 힘들지만 쩨쩨파리들이 집중공격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마지막날
토요일은 보디부족에서, 머르시 부족에서,메디 부족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곳은 주일 아침에 시장이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서기 때문에 1-2일 걸어서 미리와서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자다가 장을 보러 미리온다. 그래서 이곳 한나는 복음을 전하기 너무 좋은곳이다. 지난 한주간 이곳에와서 활주로를 만들고 경비행기를 기다린다 우리집 이웃에 사는 번형제가 경비행기를 몰고 오기로 했다.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새로 만든 활주로로 접근했지만 비좁았다. 그리고 경비행기 연료가 부족해 더 이상 시도하지 못하고 인근 부족민들이 모여사는 지역을 서베이하고 돌아와야만했다.

수도 아디스에서 골디에 부쪽을 찾아 한나까지는 1200KM로 3일에 달려왔지만 돌아가는 길은 경비행기를 대절해 250Mile 1시간 50분이면 돌아갈수 있는 길이다. 한번도 복음 듣지 못한 수많은 미전도 부족중의 하나인 골디에 부족민들에게 다가가기에는 경비행기가 착륙할수 있는 활주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이곳에 복음을 가지고 올수 있다. 활주로공사가 메디부족과 수단국경의 히디 부족들에게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기초가 된다.

이번에 우리는 골디에 부족을 찾아왔지만 또 다른 부족을 얻게된것이다. 활주로 공사를 통해 부족을 얻게되었고 싸움의 공격이 멈추는 계기다 되었다. 지난해 카니발리즘이라는 명분으로 아르시부족과 머르시 부족이 싸워 1500명이 죽었는데 이번 활주로 공사를 통해 수많은 부족들이 복음앞에 나아오기를 기도하고 이곳의 부족민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가 될수 있도록 기도해야만했다.

그후 이야기
오토바이를 타고 골디에로 들어가고 길이 더이상 없는곳부터 걸어서 들어거야만한다. 2년전 헬리콥터로 들어가 보았던 지역까지 가야만 한다. 그 마을을 어렵게 찾아 지난번에 말콤박사와 벤 형제가 만났던 그 추장을 찾아 나섰다. 오랜시간만에 그를 찾았지만 그는 우리일행이 오는 것을 간밤에 꿈을 구고 하루종일 기다리고 있는중이라한다. 간밤꿈에 하얀 옷을 입은 큰 사람이 나타나 좋은 소식을 가지고오는 꿈을 구었다한다. 벤형제가 그 부족의 언어를 유창하게하기 때문에 그를 6주동안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가뭄으로 소떼들이 죽고 아이들이 죽어가도 있는 지역이었다. 그동안 3년동안이나 비가 오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어 이번 답사를 통해 SIM본부에서 긴급구호식량이 미국에서 지원이 되어 경비행기로 이 부족에 실어 날랐다.

머르시 부족

머르시 부족에는 5,000명이 살고 있느데 최근까지 단 한명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 200여명 머르시부족민들이 통역을 통해 아버지는 타 부족이고 어머니는 머르시 부족으로 2세의 아들이 성장해 그가 복음을 전하는 통역자가 되어 이제서야 그 열매들이 볼수 있다. 인근의 수르마 미엔 부족이 50,000명을 합쳐 100,000명인데 20,000명 크리스챤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기적은 여기서부터 80세 노장의 마혜 전도사-
이번 미전도 여행중 가장귀한 동역자를 얻었다. 그는 월레이타에서 복음을 받은 전도사로 사역했다. 그의 나이는 올해 80세 그렇지만 그는 젊다. 나무를 자르고 길을 만드는데에는 천재이며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한때 공산정부때 교회 전도사란 이유로 3년이나 감옥 생활을 했는데 아름다운 간증이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을때 두다리와 두손이 묶여서 감옥생활을 해야했는데 3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와 감옥에서 집으로가야하는데 3년동안 두손과 발을 사용하지를 못해 움직일수 없어 이를 도울 군인을 보내 나귀에 태워 집으로 가야하는데 길이 너무 험해 한참가는데 도와야할 군인이 다리가 병이나고 대신 마혜전도사의 다리에 생기가 돌아 군인이 대신 나귀타고 가야할정도로 강인함을 주셨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하늘이 도운 사람 마혜 전도사이다.

골디에 부족에서 똑똑한 사람의 지혜를 얻는 방법:
똑똑한 보면 즉시 그 사람을 잡아 먹으라. 골디에 부족은 언어는 있지만 글자는 없고 학교는 더더욱없기 때문에 지식을 전수 할만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부족은 어떻게하면 지혜를 얻을수 있을까 고심하던중 지혜는 똑똑한 사람의 연룬에서 나오는것이기 때문에 그 연룬의 사람을 잡아 먹어야한다는 전통이 내려왔다 만약 여러분 곁에 똑똑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후 이야기 2
음식이 떨어지고 현지인처럼 음식을 먹고 소젖을 짜먹고 있었기 때문에 벤스케그 선교사도 설사로 5일동안 전혀 움직일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무전기도 없고 긴급 후송 경비행기를 부를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대로 텐트의 바닥에 누어 있어야만 했다. 헌터 박사만 있었어도 그가 가진 세트라이트를 이용한 전화기가 있어 응급 상황에 대처할수 있고 본부에 경비행기를 요청할수 있었는데 그는 또 다른 부족을 답사하기 위해 이미 떠나가 방법이 없었다. 모든 선교사가 이런 최첨단 이리디움 전화기인 인공위성을 이용해 전세계로 전화할수 있는 좋은 장비인데 그 장비 가격이 비싸 그저 기도하며 병이 낳기를 기도해야만 한다. 현지인 전도사도 말라리아에 걸려 비행기로 후송되어 나와 함게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기다려야만했다.

2대의 오토바이와 차를 한나에 놓고 올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갑자기 내린 비로 온 강이 물로 가득찻기 때문이다. 벤 형제가 강물이 찬 그 강에서 바뀌에 쇠줄을 걸고 나무에 묶어 여러번 시도했지만 강물이 점점 불어나실패 했다. 결국은 포기하고 에티오피아의 정부 파견 사무소를 찾아가 비상 무전을 이용해 아디스로 긴급 후송되었다.

오모강의 미전도 부족을 찾아서-미전도 부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함께 답사합시다.
교회가 이제는 미전도 부족이라는 더 넓은 지역 한 부족을 껴안고 기도하며 집중적으로 사역하는 일에 헌신해주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복음이 들어가는 시간은 오래걸릴것이며 대단히 전략적으로 사역을 해야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한번 가는 것도 정글을 혜치며 길을 만들며 가야하는 곳이고 우기인 6월부터 10월까지는 길마다 물이 차서 들어갈수 없는지역이지만 21세기에 한 부족을 껴안고 기도할수 있다면 가장 큰 사역중의 하나입니다. 저희도 사막과 같이 덥고, 음식이 없고, 물이 귀한 이곳에 쉽게 접근 할수 없는 지역이지만 가장 보람있는 사역입니다.

첫 단계는 기도로 시작해주시고 구체적으로 함께 기도하며 전략을 세워 선교의 모델을 만들어 나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가능하다면 2-3교회가 팀으로 함께 이 미 전도 부족 사역을 나눌수 있기를 원합니다. 거리가 수단 국경까지 가야하는 거리이고 때로 경비행기로 들어가야 하는 지역이라 경비가 들어가는 지역입니다.

1.먼저 비디오와 저희의 보고서를 통해 이부족을 향한 기도를 해주시고

2. 2000년 12월이나 2001년 1월중에 목사님과 선교부에서 이 부족을 방문할 수 있다면 함게 방문해 땅밝기와 복음의 전략 확산을 위한 계획을 함께 세우고 답사를 하며 계획을 세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목회자를 타부족에서 선발해 훈련시켜 단계적으로 이 부족에 파송해 교회를 시작할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4. 어느정도 교회가 부흥하면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세울수 있도록 격려하며 교회를 세워질수 있는 영적 분위기가 갖추어지면 교회건축을 돕는것이며

5. 교회가 세워지고 젊은이들이 훈련되면 이들을 더 깊은 부족으로 파송하는 것 입니다.

6. 성경을 번역하고 유치원과 학교를 세워 교회의 일꾼을 세워 지도자를 키우며 자립할수 있도록하고 이 부족에 대한 사역을 마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