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와 그리스도인(2001년 8월호)

From Ethiopia Jong-Kook Park www.EthiopiaMission.org

WWW.churchfaith.com 이구광 L290kk@hotmail.com
열린문교회 담임 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금년 상반기 서점가 소설 부문에서 베스트 셀러 1위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책이 ‘가시고기’라는 책입니다. 한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린 외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급기야는 아들을 살린 후에 자신은 죽는다는 내용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극대화 시킨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시고기는 그 부성애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집니다. 암놈이 알을 낳고 떠나가면 숫놈이 보름 동안 육아를 맡는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맑은 산소를 공급하고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어류가 오면 몸집의 크고 작고와는 아랑곳없이 필사의 전투를 벌입니다. 이렇게 먹지 못하고 사투를 다하면 체력이 소모되어 생명을 지탱 못하고 새끼들 있는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죽습니다. 이 가시고기의 죽음에 이르는 처절한 육아일기가 자연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어 참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한낱 미물인 물고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조류 중에서 그 모성애가 가장 뜨거운 것은 펠리컨이라고 합니다.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입니다. 그리고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새끼에게는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저는 소설 가시고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방송에서 방영된 가시고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 자녀들을 사랑하심에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아버지의 지극하신 그 사랑!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러한 우리의 믿음이 이 땅에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씀했지요. 우리가 이 땅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이 땅이 변하지 않는 것은 먼저 된 자들, 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변화되기 위하여 내가 먼저 양보하며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부흥하며, 성장하기까지는 그러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중의 한 명인 아펜셀러 목사님이 그러한 분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런데 아펜셀러 선교사의 최후에 대해서는 아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02년 6월11일 아펜셀러 선교사를 태운 배가 군산 항구 근해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선박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발생해서 이화학당의 여학생 두 명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아펜셀러 선교사는 그 여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었으나 결국 그는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아펜셀러는 총명하고 잘 생긴 사람이다. 미국에서 얼마든지 장래가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가 낙후된 한국에서 죽은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러나 아펜셀러 선교사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운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교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세 자녀는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의 선교사로 헌신하여 또 다시 한국교회의 선교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희생이 없는, 말로만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저는 에디오피아에서 8년째 사역하시는 박종국 선교사님(cush.park@ yimesgin.org)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긴급 기도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장은혜 선교사가 말라리아의 증상과 신장기능 이상으로 인하여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실 줄 믿고 기도를 요청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박선교사는 저에게 보낸 ‘아비시니아(강성했던 에디오피아의 옛이름)의 용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과거 에디오피아는 1950년의 한국 전쟁 소식을 듣고 한국에 즉시 파병하기로 결정한 당시의 하일레 슬라시에 황제의 도움으로 6,000명의 군인을 파병하였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전쟁 사상자가 120명, 중상이 536명이었으나, 참전한 국가들 중 행방불명과 포로가 없는 유일한 군대로 소문이 나 있다고 에디오피아를 소개하면서 당시 아비시니아의 군인들은 죽기까지 싸우므로 행방불명이나 포로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을 위해 싸우며 죽을지언정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되지 않았던 그 옛날 아비시니아의 용맹했던 용사들의 나라 에디오피아. 그러나 지금은 강성했던 당시의 용맹은 간데 없고 이제는 맨발의 소년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는 모습의 이 나라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그 땅에 뼈를 묻을 각오로 선교하며, 진정으로 에디오피아의 영혼을 사랑하는 선교사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와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우리 한번 가시고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