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 깐 은꼴랄 버 으그르 이헤달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릭으로 “어느 날 계란은 발로 걸어 갑니다”)

오랫동안 선교지를 향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다가, 에디오피아에 도착했을 때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과 문화,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기위해 무던히 애를 쓰던 가운데 모든 것이 빨리 열매맺지 못하여 오는 조급함때문에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다.

에디오피아 도착후 처음9개월 동안은 암하릭어를 배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언어 훈련과정을 모두 끝냈지만, 내 실력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말을 더듬고, 성경조차 읽을 수가 없으니, 말이 언제 늘어서 사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함과 조급함때문이었는지 어느날은 개인교습 시간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선교사들에게 언어를 가르쳐 왔던 Language helper인 요세프는 마음 상해있는 나에게 에디오피아 속담 하나를 넌지시 가르쳐 주었다. 안드 깐 은꼴랄 버 으그르 이헤달! 번역을 하면, 언젠가는 계란이 발로 걸어 갈 것입니다 라는 의미가 된다. 계란이 발로 걸어간다? 지금은 계란이 발로 걸을 수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걸어갈 것이라는 에디오피아 문화 속에 담긴 격려의 말이다.

처음 우리가 선교본부에서 배정받은 사역은 짐마에 새로 생긴 신학교에서의 교수사역이었다.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서 남서쪽으로 8시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끝없이 펼쳐지는 숲을 지나 산 중턱에 자리잡은 조그만 흙집에 짐을 풀고 첫 사역이 시작 되었다. 산중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짐마시는 너무나 아름다왔고, 아름다운 새들과 이나무 저나무를 이동하는 여러종류의 원숭이들, 그리고 마당에 주렁주렁 열린 열대과일들… 이곳이 내가 그렇게 기도하고 마음 졸이며 그리워 하던 곳이었던가? 이 순간을 위해 모든 훈련과정과 준비과정들을 거치며 선교사로의 콜링을 재확인하던 모든 절차들의 고생스러웠던 순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설픈 암하릭 실력으로 12학년을 졸업한 전도사 후보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두근거린다. 게다가 내가 택한 강의 과목은 성령론. 성령론 강의의 교재가 제일 얇았기 때문에, 다른 두꺼운 책들에 비해서 일단은 내가 읽어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한단원을 읽고 해석하는데, 꼬박 1주일이 걸렸다. 한주에 2시간 강의를 위해 매주 2단원씩은 소화를 해내야 하는데, 정말 불가능해 보인다.

학교가 시작되기도 전에 각부족에서 온 학생들로 기숙사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파부족에서, 또 미엔에서, 시다모에서, 감벨라에서 여러부족에서 각각 온 학생들이 26명.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은 자기 부족어. 그리고 공용어로 암하릭을 써야하지만, 아주 시골에서 온 학생들이라 태반은 암하릭은 제2외국어이다. 강의 첫날, 인사말은 무사통과! 성령이란 무엇인가 … 열심히 준비한 강의안을 보고 설명해야 할 내용들을 읽어 내려 갔다. 와, 읽는데 성공!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신통치가 않다. 발음은 정확하게 한 것 같은데… 내 말을 이해하는가? 식은땀이 흐르며,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고, 알았던 말들조차도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당황하는 내 앞으로 키 큰 남학생 하나가 싱긋 웃으며 걸어나왔다. “내 이름은 터스화예(암하릭으로 그의이름 뜻은 나의 소망)입니다. 강의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순간 나는 학생들이 내가 설명하고 있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 어떻게 제가 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에 돌아 온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배우고자 각오를 하고 자기부족을 떠나온 학생들 앞에서 선교사인 내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앞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니 이곳에서 어떻게 사역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어설픈 내 암하릭을 이해하기 힘들었을텐데도 학생들은 한마디 불평없이 내 강의를 들어 주었다.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헌신, 그리고 언젠가 내 암하릭이 발이 나와 걸어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용납해 주는 그 사랑에 힘입어 내 강의는 계속 진행되었고, 2년후 이들은 1회로 신학교를 졸업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신학생들은 자기들의 부족에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돌보며, 우리 선교사들보다 더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무슬림에서 개종하여 나와 2년을 함께 공부한 후 전도사가 된 후세인, 아만, 이맘… 그리고 미엔부족에서 처음으로 신학교를 졸업하여 전도사가 된 합타무와 불구… 가끔 이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못먹고 힘들어 꺼칠한 얼굴, 꼬죄죄 때가 낀 셔츠에 구멍난 신발을 신은 그들의 모습은 냄새나는 여지없는 거지꼴이지만, 바울이 입맞추며 내아들이라 부른 디모데처럼(딤전1:2), 그들 역시 내게는 가슴에 꼭 품고 입을 맞추며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이제는 믿음안에서 나의 참아들이 되었다.

안드 깐 은꼴랄 버 으그르 이헤달 ! 언젠가는 계란이 발로 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의 힘으로 말입니다!

장은혜 선교사/에티오피아 www.EthiopiaMission.org

박종국선교사의 아내로 신학교 사역을 했고 이제는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에티오피아 신학교에서 이사로 섬기고 있다.